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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의 행인일기 78]진천에서

최종수정 2018.02.02 10:07 기사입력 2018.02.02 10:07

윤제림 시인

작년 가을입니다. 광주(廣州) 곤지암 역을 지나는데, ‘신립(申砬)’장군 묘역 표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화살표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산소로 오르는 저를 보고, 어떤 노인이 다가와 묻더군요. “신 씨십니까?” 고개를 저으며 답했습니다. “아니요. 그냥 나그네인데, 장군님께 인사나 드리고 싶어 들렀습니다.”

노인이 또 물었습니다. “성씨(姓氏)가 무엇이오?” 후손도 아닌 이가 참배를 하겠다니, 정체가 궁금해진 모양이었습니다. ‘파평 윤씨’라고 밝히면서, ‘김여물(金汝?)’ 장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의 부장(副將)으로, 장군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 인물이지요.

‘문경새재’의 아쉬움과 ‘탄금대’의 안타까움을 말하는 장면마다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유성룡의 ‘징비록’에도 나오지요. “일터 근처에 김여물 장군 무덤과 신도비 그리고 그 일가의 ‘충렬문’이 있습니다. 신립 장군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렇게 신 장군에 대한 인연을 늘어놓는데, 노인이 느닷없는 질문 하나를 보탰습니다.

“파평 윤씨도 잉어 안 먹지요? ” 어리둥절해하는 제게 노인이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저희도 안 먹습니다. 강물에 몸을 던진 장군의 시신을 찾지 못해 애태우는데, 어느 어부가 잡은 잉어 뱃속에서 ‘옥관자(玉貫子)’가 나왔습니다. 장군님 머리 장식이었지요. 그제야 무덤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잉어를 먹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노인의 얼굴에서는 비장함까지 읽혔습니다. 거기 비하면, 윤씨 집안 사연은 듣기가 편안합니다. 몇 가지 설(說)이 있는데, 저는 ‘윤관(尹瓘)’ 장군 얘기를 믿습니다. ‘장군이 거란군의 포위망을 뚫고 강가에 이르렀을 때, 잉어 떼가 나타나 다리를 놓아주었다. 적군이 따라붙으려 하니,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윤씨네는 ‘잉어님’들께 무조건 감사의 절을 올려야 합니다. 칠석날 까마귀와 까치들처럼 몸으로 다리를 놓아, 위기에 처한 조상님을 구해주었으니까요. ‘월천공덕(越川功德;물을 건네주는 일)은 ‘회심곡(回心曲)’에서도 일등급의 선행(善行). 오늘 제가 건너온 다리 하나에도 그렇게 착한 마음이 깃들어있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다리입니다. 우리나라 다리들 중에서, 누가 제일 나이가 많은지를 물으면 이것이 손을 번쩍 치켜들 것입니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졌다는데,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물이 불어난 내(川) 앞에서 한 여인이 흐느끼고 있더랍니다. 지나던 장군이 연유를 물으니, 여인이 이렇게 답했다지요.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물이 막혀 건널 수가 없군요. 이 불효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효심에 감동한 장군이 용마를 타고 이리 번쩍 저리 번쩍 하며, 다리를 놓았답니다. 이 얘기를 곧이곧대로 들어도 좋을 만큼, 이름도 생김새도 특이합니다. ‘농(籠)다리’. 충북 진천의 상징과도 같은 유적이지요.

백여 미터에 이르는 돌다리입니다. 고만고만한 자연석을 차곡차곡 들여쌓아서 스물여덟 칸의 교각을 마련하고, 그 위에 어른 키만 한 바윗돌을 올렸습니다. 멀리서 보면 지네를 닮았지요. 그저 무심코 척척 올려쌓은 돌무더기처럼 보이는데, 웬만한 ‘큰물’에는 끄떡도 없답니다.

엉뚱한 상상이 일어납니다. 임(林)씨 집성촌인 이 마을 조상, ‘임연(林衍)’장군이 만들었다는 이 다리에도 물고기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제 생각엔 꼭 그랬을 것만 같습니다. 간절한 염원이 천지신명을 움직여 온갖 물고기가 모여들더니, 물 위에 길이 열리는 장면이 동화책의 그림처럼 떠오릅니다.

이 다리가 천년 세월을 견디는 이유 하나는, 돌들을 물고기 비늘처럼 촘촘히 얽어쌓은 데에 있답니다. 그래서일까요. 제 눈에는, 농다리와 이 물 ‘세금천(洗錦川)’이 한 몸으로 보입니다. 저 돌들이, 물귀신 허락 없이 어찌 제자리를 지켰겠습니까. 물고기들 도움 없이 어떻게 천년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앉아있겠습니까.

농다리를 건너면, ‘초평호(草坪湖)’입니다. ‘죽어서 용인, 살아서 진천’이란 말이 옳다면, 진천의 ‘밥과 복(福)’은 여기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고장 사람과 짐승을 두루 살리고, 논과 밭을 고루 적시는 생명의 샘이니까요. 저는 지금, 그 한 귀퉁이에서 저녁상을 받고 있습니다.

‘붕어마을’입니다. 붕어낚시, 얼음낚시로 워낙 유명해서 낚시꾼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요. 자연스럽게 ‘붕어찜’이 향토음식 반열에 오르고, 물고기 이름이 마을 문패에까지 들어갔습니다. 붕어마을은 ‘붕어의 마을’로 읽어도 좋을 것입니다. ‘붕어마을’ 사람들이, 누구 덕에 사는지를 알고 있다는 증표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런 생각으로 호숫가에 나와 서니, 꽁꽁 얼어붙은 물속 풍경이 그려집니다. 붕어, 잉어…. 물고기 세상이 보입니다. 어떤 물고기들은 은공(恩功)을 잊지 않는 이들에게, 무슨 선물을 줄까 의논을 하는 중입니다. 유품을 찾아주고, 다리를 놓아주던 바로 그들입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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