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잘 실수를 하긴 하지만 주방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된 데는 이유가 있다. 20여년이 넘은 결혼생활 동안 꼬박꼬박 아침밥을 먹고 다녔다. 간 큰 남자란 소리를 수도 없이 듣고 살았지만 그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어느날, 가족이 둘러앉아 텔레비전(TV)을 보고 있을때다. 일명 '요섹남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 이라 불리는 연예인들이 출연한 쿡방ㆍ먹방 프로그램이다. TV속에 등장한 멋진 남자들이 주방에서 능숙하게 맛깔스런 요리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속으로 남자 망신시킨다며 눈을 살짝 흘기기도 했지만 솜씨들은 신기할 만큼 대단했다. 맛을 본 출연자들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 바빴다.
세월이 흘렀다. 피(?)나는 노력 덕분에 그나마 맛볼 수 있을 만한 음식(요리라고 말할 순 없다)들이 만들어졌다. 그래봐야 비슷비슷한 음식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허풍 덕분에 음식 만드는 일이 재미있다. 이번엔 무엇을 만들어볼까 고민하는 시간도 재밌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것도, 도마 위에 재료를 펼쳐놓고 하는 칼질도, 중간 중간에 하는 실수도, 완성된 음식을 그릇에 옮겨 담아 놓는 것도 재밌다. 이보다 더 재미난 것은 가족들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휴일 저녁, 어김없이 가족들은 식탁에 모여 앉는다. 어떤 음식을 내놓아도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준다. 칭찬은 코끼리도 춤을 추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게다. '아빠 최고' '대단하다' 라는 한마디에 다시 부엌으로 향하게 되니까.
손가락 피 좀 보고, 주부습진(요즘 나타난 증상) 좀 생긴다고 뭐가 대수겠는가. 가족들과 나눌 수 있는 저녁 있는 삶이 있다는 게 더 소중한 일인걸. 부엌데기가 된 것이 즐겁다.
조용준 사진부장ㆍ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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