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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안내] 이영광, 최승호, 김선재의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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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지성 시인선 512, 514, 515

◆끝없는 사람(이영광 지음/문학과지성사)=이영광은 동시대의 문학과 풍경, 사람과 사건을 견고하고 명징한 언어로 묘사해왔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 『끝없는 사람』은 몸의 시학에 관한 한국문학사의 가장 전위적인 실천으로 평가받으며 미당문학상 수상작이 수록된 『나무는 간다』(창비, 2013)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다.

이영광은 1998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한 이래 시대와 존재의 고통을 체화한 시들을 선보였다. 시인 신경림이 “이 땅에 사는 평균적인 사람이라면 가질 수 있는 생각들을 섬뜩할 만큼 치열하고 날렵하게 형상화했다”([제11회 미당문학상 심사평])라고 호평한 것처럼 이영광은 참혹한 현실과 죽음의 경계에서 시적 언어로 생의 활로를 모색하고자 부단히 애써왔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사람이 지닌 한계이자 매개인 ‘몸’을 통해 ‘사람다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이곳’에서 물러서지 않는 방식으로 세계의 난폭과 몰이해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것은 “부서지지 않는 강인함이 아니라 막다른 곳에서 서서히 허물어지면서, 허물어짐으로써, 허물어지기 때문에 버티어내는 자의 강인함”(이장욱)을 연상시킨다.
이영광은 현실의 위협에 맞춰 변화를 꾀하기보다 자신이 지금 감지하는 통증과 몸의 언어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사람다운 삶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속한 세계의 고통과 상처를 기꺼이 감내해야만 비로소 사람다울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방부제가 썩는 나라(최승호 지음/문학과지성사)=최승호는 1977년 등단한 뒤 사물을 느껴지는 그대로 포착해내는 직관력을 바탕으로 현대 문명의 화려한 껍데기 아래 썩어가는 사회의 단면을 들추어내면서 죽음을 향하는 육체로서의 인간을 노래하는 시들을 써왔다. 『방부제가 썩는 나라』에는 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강한 비판 의식을 비롯해 특유의 위트 있는 시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승호의 시 세계에서 이곳은 “방부제도 썩는 나라”다. 여기서 썩지 않는 것은 오로지 하나, “뻔뻔한 얼굴”(「방부제가 썩는 나라」)뿐.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자본주의를 향한 강한 믿음에 취해 모든 것이 부패해버린 곳, 최승호의 “방부제도 썩는 나라”는 바로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이 세계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방부제도 썩는 나라에서 우리가 살아갈 이유는 “먹고 번식하”는 일뿐이다. 최승호의 시 세계에서 인간은 그저 생존을 위한 활동에만 목을 매는 고철 덩어리 혹은 고깃덩어리이다.
이 시집에서 “나”로 지칭되는 화자는 대개 인간으로서의 “나”가 아니라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위치에 놓인 다른 생명체로 드러난다. 최승호 시에서 자연의 생명체는 시인의 입을 빌려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그들이 시인의 입을 통해 스스로 목소리를 가질 때 “거대한 관을 깨뜨릴” 가능성이 생길 수 있음을, 자연의 숨결이 똥으로 가득 찬 인간 세상에 다른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음을 암시한다.


◆목성에서의 하루(김성재 지음/문학과지성)=김선재의 두번째 시집. 그는 첫 시집 『얼룩의 탄생』에서 흐리마리한 흔적들을 더듬으며 상실의 슬픔을 담담하게 기억해냈다. 첫 시집이 불분명한 기억 속의 슬픔과 재회하는 과정을 담았다면, 두 번째 시집은 일상을 미세하게 진동시키는, 마음의 한구석에서부터 전해져온 감정의 궤적을 보여주고 있다. 처연하지만 담담하게 우울을 응시하는 시적 태도가 유지되면서도, 표현의 절제와 언어의 조직을 통해 가닿고자 하는 감정의 공간을 좀더 자유자재로 변주한다.

특히 경계를 지시하는 시어들을 빈번하게 등장시키며 이 효과를 증폭시키는데, 문학평론가 조강석은 시집 해설에서 이를 물리적·심리적 위치와 연결 방식의 변형을 통해 마음의 궤적을 추적하는 ‘위상기하학’이라고 명명하며 경계와 관련한 시어들이 기능하는 원리에 대해 설명한다. “안과 바깥, 위와 아래라는 물적·심적 ‘방위사(方位辭)’들이 시집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공간의 규모를 수시로 조절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지평선, 해안선, 테두리, 가장자리, 모퉁이, 구석 등이 심리적 변경의 수축과 확장을 주관하고 있다.”

“이 시집은 자신의 자취를 조정하는 내밀한 방에 비견되며, 변화무쌍한 자취를 조율하는 시어는 안과 바깥, 위와 아래라는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방위사’들이 시집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공간의 규모를 수시로 조절한다. ‘유머가 된 사랑’이나 ‘추억이 된 혁명’과 같은 소문과 비밀 들이 영토 확장에 따라 하강과 상승을 거듭하는 세계들의 기저에 기입되고 그것은 이따금 일상적 지각에 기별을 전해온다. 마음의 모양을 결정하던 사람과 사실과 사태와 사랑이 모두 해가 기우는 쪽 어딘가로 옮겨지고 이제 그것은 변경을 밀고 가는 이에게는 무한이 될 ‘지상의 영토 끝까지’ 동행한다.”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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