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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칼럼]중앙은행 총재들의 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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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 모여 '글로벌 경제의 역동성 강화'에 대해 논의했다. 통화정책과는 거리가 먼 주제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지난 6월 개최한 포럼의 주제로 '선진국의 투자와 성장'이라는 비(非)통화적인 주제를 택했다.

중앙은행은 당초 경제성장률에 개의치 않고 물가안정을 유지하겠다는 목표로 설립됐다. 그런데 왜 중앙은행들이 그들이 책임져야하는 고유영역이 아닌, 성장ㆍ무역ㆍ투자 등 경제가 당면한 과제에 대해 집중하고 있는 걸까. 그것은 아마 중앙은행 스스로도 현재 상황에 대한 접근법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경제 상황은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데 우호적이다. ECB의 경우를 살펴보자. 1999년 1월 유로화 도입 시 세계 금융시장은 아시아 외환위기, 러시아 국가부도 위기 등으로 혼란스러웠다. 흔히 공포지수라고도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의 변동성지수(VIX)는 그 해 8월 44%를 찍었고 이후 몇 년 간 25~30%선을 맴돌았다. 최근의 12% 안팎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국가)의 실업률 또한 감소하는 추세였지만 10% 안팎으로 최근 수준(9.3%)을 웃돌았다. 물가상승률은 2%에 못 미쳤고 소비자물자지수 상승률은 1% 안팎을 기록해 최근과 비슷했다. 이를 통틀어 볼 때 유럽 금융시장은 1999년보다 지금이 훨씬 더 안정적이다.

1999년 당시 ECB는 제로금리나 마이너스 금리와 같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목표금리를 2%로 고정했다. 이후 ECB는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낮췄지만, 이는 단지 경제회복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수준이었다. 몇 달 후 기준 금리는 2%로 돌아갔다. 다음 해에는 3.75%까지 높였다.
오늘날 유럽 경제는 물가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밑돌고 있지만, 노동시장은 더 양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활동참가율도 1999년보다 5%포인트 이상 높다. 이 같은 경제활동 참가율은 경기 후퇴 시 실업자들이 구직을 포기하고 노동시장을 떠나 실업률이 낮아진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ECB가 왜 마이너스 금리, 채권매입과 같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지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장기 인플레이션 전망이 불확실할 수 있다. 하지만 전망치에 못 미친다고 해서 시장이 불안했던 1999년 당시 보다 2.5%포인트 이상 기준금리를 낮추고 대규모 양적완화를 실시할 필요성이 있을까.

이 같은 부조화는 유럽에만 국한돼있지 않다. 미국도 20년 전과 비교해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이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99년 미국의 근원물가는 2%대를 나타냈고, 실업률은 5%를 밑돌았다. 당시 연방기준금리는 5%였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기준금리를 1.0~1.25%로 유지하고 있다. 1999년 금리와 격차가 3.75%포인트에 이른다. 게다가 Fed는 양적완화를 실시하며 사들인 채권으로 부풀어 오른 대차대조표 축소도 미뤄왔다.

일본 역시 물가상승률은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보다 높고, 실업률은 50년간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경제활동참가율은 최고치를 경신중이다. 그럼에도 일본 중앙은행(BOJ) 역시 미국과 유럽처럼 디플레이션이라는 '풍차'를 물리치기 위해 달려가는 돈키호테처럼 최저금리ㆍ양적완화를 고수하고 있다.

중앙은행 총재들도 역동적인 세계 경제를 바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오히려 중앙은행이 왜 골대를 움직였는 지와 지금이 옮겨진 골대를 제자리로 돌려놔야 할 때인지를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다니엘 그로스 유럽 정책연구센터 소장 / 전 유럽의회 정책 자문

ⓒ Project Syndicate / 번역: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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