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베트남 호치민(HoChiMinh)의 사이공강 광장 앞 로터리에는 손가락으로 강을 가리키고 있는 한 장군상을 만날 수 있는데, 이 동상의 주인공은 '베트남의 이순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베트남의 위대한 전쟁영웅으로 알려진 쩐흥다오(陳興道) 장군의 동상이다.
그는 원래 13세기 베트남을 지배했던 쩐(陳) 왕조의 왕족으로 당시 베트남의 왕이었던 태종과 사촌지간이었다. 아버지가 조정 내의 권력다툼에 패배해 조정과 대립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은 몽골제국의 침공이었다. 1257년, 몽골군 장수 우리양카다이(兀良合台)가 당시 몽골에 끈질기게 저항 중이던 남송을 공격하기 위해 베트남에 길을 빌려달라고 사신을 보내면서 몽골제국과 베트남의 접촉이 시작된다.
이후 몽골은 1276년 남송을 무너뜨린데 이어 1283년에는 베트남 남부 일대에 있던 참파왕국을 공격하기 위해 베트남에 군사를 파병하라고 압박했다. 베트남이 이 제안을 거절하자 분노한 당시 몽골제국 황제인 쿠빌라이 칸은 1285년, 아들인 토곤(脫驩)을 사령관으로 삼아 50만 대군으로 베트남을 공격했다. 수적으로 불리했던 베트남군은 참패해 다시 수도인 탕롱성이 함락됐고, 대부분 신하들도 몽골에 항복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게 됐다.
바익당 전투 묘사도. 당시 쩐흥다오 장군은 퇴각하는 몽골군을 섬멸하기 위해 조수간만에 따라 수심이 달라지는 바익당강에 쇠말뚝을 설치, 몽골군을 유인하는 작전으로 대승을 거뒀다.(사진=위키피디아)
원본보기 아이콘이때 쩐 장군이 구국의 영웅으로 나섰다. 그는 임금에게 "항복하려거든 신의 목부터 베소서"라고 간하며 "모든 국민이 떨쳐 일어나 마음을 뭉쳐 싸운다면 이길 것"이라고 임금을 설득했다. 이후 격장사(檄將士)'라는 글을 지어 베트남 청년들에게 돌렸다. 그는 이 글에서 "쿠빌라이의 머리를 대궐 아래 매달고 토곤의 살점을 장안 거리에서 썩게 해야한다"고 강하게 외쳤고, 이 글을 보고 피난가던 베트남인들이 군에 자원입대하면서 순식간에 25만에 달하는 병력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그는 여전히 숫적으로 압도적인 몽골군과의 전면전은 피하고 지속적으로 몽골군을 괴롭히는 게릴라전을 시작한다. 그를 따르는 베트남 군도 팔꿈치에 몽골 오랑캐를 죽이겠다는 의미의 '살달(殺撻)'이란 글을 문신으로 새기며 집요하게 게릴라전을 펼쳐나갔다. 결국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고생한데로, 정글과 밀림 속 게릴라전에 익숙치 않은 몽골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몽골군 50만명은 폭염과 식량부족에 지쳐 대패해 물러갔다.
하지만 쿠빌라이 칸은 또 한번 대규모 원정을 기획한다. 이번엔 30만명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해 수륙 양면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몽골군은 또다시 쩐 장군의 게릴라전에 병참선이 무너지고 열대 전염병이 부대 전역으로 퍼져 도저히 전쟁을 이어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결국 1288년 몽골군은 퇴각을 위해 집결, 수로를 통해 바익당강을 건너 퇴각하려고 했다.
이때 쩐 장군은 퇴각하는 몽골군에 최후의 일격을 날린다. 당시 바익당강은 밀물과 썰물 때 수심차이가 심한 강이었는데, 이를 이용해 몽골군을 대거 격퇴한다. 먼저 바익당강 일대에 쇠말뚝을 잔뜩 박아둔 뒤, 몽골군을 유인해 썰물 때까지 수세에 몰리는 것처럼 물러서다가 썰물 때 몽골군 함선이 쇠말뚝에 걸리면 그때 총공격을 하는 작전이었다. 몽골군은 제대로 이 전략에 휘말려 참패를 했으며 이 전투에서만 10만명 이상의 군대를 잃었다. 이로 인해 쿠빌라이 칸의 동남아시아 원정 작전은 대실패로 돌아갔으며, 몽골군은 다시는 베트남을 침공하지 않게 됐다.
쩐 장군은 그 후에도 국경을 계속해서 지키다가 13년 뒤인 1300년 사망했으며 임종 때 임금에게 "군대는 부모자식처럼 단결시키고 백성을 너그럽게 대하면 대업을 성취할 것입니다"는 말을 남기고 사망했으며 모든 베트남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한다. 이후 역사에서도 그의 일대기는 베트남이 세계 최강의 열강들과 맞서싸우는 힘이 됐다. 이후 베트남에서 외세와의 전쟁이 완전히 종료된 것은 그가 죽고 700년 가까이 지난 1979년, 중·월전쟁이 끝난 이후였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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