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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요일에 읽는 전쟁사]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십자군이 패배한 이유가 '폭염'?

최종수정 2018.07.17 21:10 기사입력 2018.07.1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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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킹덤 오브 헤븐' 장면 캡쳐)

(사진=영화 '킹덤 오브 헤븐' 장면 캡쳐)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중세 십자군 원정에 대해 다룬 여러 영화 중 전투 고증을 매우 잘한 영화로 지난 2005년 리들릿 스콧 감독이 연출한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이 손꼽히곤 한다. 해당 영화는 서기 1187년 7월4일 벌어진 2차 십자군과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와의 히틴(Hittin) 전투와 그 직후 벌어진 예루살렘 공방전을 주 무대로 하는 전쟁영화다. 영화 속에서나 실제 역사 속에서나 십자군은 이 전투에서 참패했으며,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제3차 십자군이 결성되는 계기가 됐다.

영화 속에서 히틴 전투를 치르는 십자군들은 전면전을 치르기도 전에 태양을 바라보며 하루종일 헤매다가 폭염에 지쳐 쓰려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십자군이 패배한 주요 원인은 이슬람 기병대와의 전면전에서 밀린 것이 아니라 폭염에 지쳐 쓰러질 때, 이슬람군이 기습을 가하면서 대패한 것으로 나온다. 전투 전 십자군은 숫적으로도 우세했고, 철갑으로 무장한 강력한 기사들의 위력을 앞세워 기세등등했지만 폭염 속에 물부족이 겹치면서 크게 지친상황에서 기습을 당하면서 그대로 무너진다.
시리아 다마스커스에 위치한 살라흐 앗 딘 동상. 그는 12세기 말 이집트와 중동 일대에서 크게 활약한 전략가로 2차, 3차 십자군의 침공을 효과적으로 막아낸 뛰어난 군주로 알려져있다.(사진=위키피디아)

시리아 다마스커스에 위치한 살라흐 앗 딘 동상. 그는 12세기 말 이집트와 중동 일대에서 크게 활약한 전략가로 2차, 3차 십자군의 침공을 효과적으로 막아낸 뛰어난 군주로 알려져있다.(사진=위키피디아)



폭염을 최대한 활용한 이슬람군의 전략은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살라흐 앗 딘, 서양에서 보통 '살라딘(Saladin)'이라 불리는 탁월한 전략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이 전투에 앞서 1177년, 몽기사르 전투에서 예루살렘 왕국의 왕인 보두앵4세와의 전투에서 크게 패배한 바가 있어 십자군 기사들의 무서운 공격력과 그들의 단단한 무장력, 그리고 강인한 체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전면전은 여러모로 불리할 것이라 여긴 살라딘은 십자군을 끌어내기 위해 계략을 꾸민다.

그는 십자군을 예루살렘에서 사막으로 끌어내기 위해 티베리아스라는 요새성을 먼저 공격한 뒤, 전투를 일부러 질질 끌면서 성을 함락시키지 않고 버텼다. 당시 예루살렘 왕국은 탁월한 전략가로 10년 전 살라딘에게 패배를 안긴 왕인 보두앵4세가 죽고 그의 여동생 시빌라의 남편인 기 드 뤼지냥(Guy de Lusignan)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다. 그는 살라딘의 군대를 매우 우습게 생각했고, 살라딘의 전략에 휘말리면 안된다는 신하들의 조언을 저버린채 왕국의 거의 모든 전력을 이끌고 티베리아스 요새로 진격했다.
당시 십자군은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나온 전투장면에서처럼 '성십자가(True Cross)'라 불리는 거대한 십자가상을 이끌고 진군하면서 그 주위로 십자형태의 진형을 갖춘 채 똘똘뭉쳐 이동했다. 히틴 전투에서는 이 진형으로 한여름 한낮의 사막을 행군하는 바람에 참패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사진=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장면 캡쳐)

당시 십자군은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나온 전투장면에서처럼 '성십자가(True Cross)'라 불리는 거대한 십자가상을 이끌고 진군하면서 그 주위로 십자형태의 진형을 갖춘 채 똘똘뭉쳐 이동했다. 히틴 전투에서는 이 진형으로 한여름 한낮의 사막을 행군하는 바람에 참패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사진=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장면 캡쳐)



초반 십자군의 기세는 대단했다. 중무장한 3만명 가까운 대군을 동원한 십자군은 영화 속에서처럼 거대한 성십자가상을 둘러싸고 십자가형태로 똘똘뭉쳐 이동했는데, 이것은 단순히 신앙심에 대한 표현일 뿐만 아니라 사기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문제는 이렇게 똘똘뭉쳐 이동할 경우, 가뜩이나 무더운 여름철 사막의 폭염 속에서 거의 숨도 못쉴 지경이 된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반나절이면 티베리아스 요새에 도착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차 앞뒤 가리지 않고 진격했다.

이 십자군은 대부분이 철갑옷과 방패로 중무장한 상태였다. 수십 킬로그램(kg)이나 되는 철갑옷을 입고 한여름 한낮의 사막을 10킬로미터(km) 이상 걸어간 십자군은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살라딘은 가벼운 복장의 궁기병대로 십자군을 괴롭히면서 물러날 뿐, 전면전을 걸지 않고 계속 자신의 진영을 뒤로 물릴 뿐이었다. 결국 해질 무렵, 십자군은 너무 지쳐 티베리아스에 도착하지 못하고 히틴의 뿔이라 불리던 언덕지역에 진을 쳤다. 마실 물도 대부분 떨어졌지만, 예루살렘과는 상당 거리가 떨어져있었고, 그나마 보급로도 살라딘이 막아버린 터라 더위와 갈증에 시달리며 지쳐갔다.

하틴 전투 이후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해 항복을 받아내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으며 이로 인해 2차 십자군 이후 세워진 예루살렘 왕국은 멸망하고 유럽에서 3차 십자군이 결성되게 된다.(사진=영화 '킹덤 오브 헤븐' 장면 캡쳐)

하틴 전투 이후 살라딘은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해 항복을 받아내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으며 이로 인해 2차 십자군 이후 세워진 예루살렘 왕국은 멸망하고 유럽에서 3차 십자군이 결성되게 된다.(사진=영화 '킹덤 오브 헤븐' 장면 캡쳐)



다음날 날이 밝자, 살라딘은 밤새 갈증으로 지친 십자군 진영으로 불을 피워 매캐한 연기를 들여보내고 살짝 포위망을 열어 갈릴리 호수까지 연결되는 좁은 통로를 만들어줬다. 이미 갈증에 이성을 잃은 십자군은 진형이 와해된 채 너도나도 갈릴리 호수로 뛰어들어가기 시작했고, 이 틈을 타 살라딘의 기병대는 무너진 십자군의 진형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맹공을 펼쳤다. 결국 3만 가까운 대군이었던 십자군은 10분의 1도 살아남지 못한 채 궤멸되고 말았다.

결국 거의 모든 군사전력을 상실한 예루살렘 왕국은 뒤이어 이어진 예루살렘 공방전에서 결국 항복, 이로 인해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예루살렘 왕국은 완전히 멸망한다. 이후 유럽에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영국의 사자심왕 리처드 1세가 참전하는 3차 십자군이 결성되게 된다. 군사적 능력만 지나치게 과신해 폭염의 무서움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2차 십자군의 참패는 두고두고 역사 속에서 회자되게 됐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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