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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9]확대본능-현미경의 발전사

최종수정 2018.08.27 13:42 기사입력 2018.01.10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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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 '어린왕자' 중

'돋보기'란 말을 곱씹어 생각하면 아름다운 한글이란 생각이 듭니다. 돋보기는 보고자 하는 대상을 두드러지고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의미를 그대로 담은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대상은 반드시 유형의 사물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실체가 없는 무형일 수도 있지요. 가끔 복잡해 보이는 사람의 마음이나 사건 혹은 세상에 돋보기를 대보기도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누구나 한 번은 돋보기를 사용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지금 이 칼럼을 읽으려 돋보기를 꺼내는 분도 있겠지요. 적어도 어릴 적에 돋보기를 들고 이곳저곳 다니며 작은 곤충이나 물체를 확대해서 본 기억이 있을 겁니다. 작은 유리창을 통해 확대돼 보이는 세상은 신기하고 흥미롭습니다. 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에 겹쳐진 다른 차원의 세상을 확인하는 우주적 경험 때문이겠지요. 인간이 가진 자연적 능력으로 볼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늘 한계 너머에 존재하는 작은 세상을 궁금해합니다. 인류는 도구를 만들어서 볼 수 있는 능력을 높이지요. 돋보기가 대표적인 도구입니다. 그런데 과학에서는 돋보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돋보기보다 크게 확대해서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현미경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학창 시절에 양파 껍질의 표피세포를 현미경을 통해 맨눈으로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양파 세포의 경우 약 1000배의 배율 정도면 자세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광학현미경은 작은 돋보기나 여러 기능의 렌즈를 겹쳐 엄청난 배율을 만들어 사물을 확대해서 관찰할 수 있게 하는 기구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광학현미경은 빛의 성질을 이용한 물리적 한계 때문에 가시광선 파장의 절반인 200나노미터(㎚ㆍ10억분의 1m를 가리키는 단위로 고대 그리스어에서 난쟁이를 뜻한 '나노스'에서 나온 말입니다. 1㎚는 대략 성인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해당합니다)보다 작은 물체는 식별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를 제시한 독일 과학자 에른스트 아베의 이름을 따서 '아베 회절 한계'라 부릅니다.

현재 과학자들은 원자 크기의 미시 세계를 관찰하기 위해 광학현미경보다 정밀한 관측 장치를 사용합니다. 이 장치들은 아베 회절 한계를 포함한 여러 한계를 하나씩 극복했거나 새로운 발명을 통해 더욱 정밀해진 겁니다. 성능이 엄청난 현미경이지만 엉뚱하게도 과학자들을 괴롭히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바로 '진공'입니다. 진공이 현미경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오늘은 현미경의 과학사 한 편을 보겠습니다.

에른스트 아베
'보일의 법칙'이 있습니다. 일정 온도로 유지되는 기체에서 부피와 압력은 반비례한다는 법칙입니다. 이 실험은 공기가 원자와 분자로 이뤄져 있으며 무게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결국 이 인식은 진공을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지요. 진공이란 뭘까요? 진공은 공간 안에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진공 상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할까요? 원시적인 방법이지만 밀폐된 공간에 있는 기체 물질을 펌프로 뽑아내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현재 인공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진공도에도 1㎤당 약 3만5000개의 기체 분자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완전한 진공은 그만큼 어렵습니다. 진공을 인식하게 한 위대한 발견에 대해 사람들은 보일만 기억합니다. 사실 이 실험에는 로버트 훅이라는 조수가 있었지요. 훅은 아쉽게도 이 법칙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훅은 다른 실험적 성공으로 역사에 이름을 기록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말하려는 현미경입니다. 그는 렌즈를 통해 미시 세계를 철저히 연구했고 그가 만들어 사용한 장치가 바로 근대 현미경의 시초가 됐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현미경 이미지를 사진으로 촬영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현미경을 통해 본 것들을 손으로 정밀하게 그렸으며, 그 그림들을 모아 '마이크로그라피아(Micrographiaㆍ1665)'란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책의 곤충 세밀화는 훅이 과학자인지 화가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우리가 최근 논문이나 기사에서 보는 원자나 분자의 모습은 형형색색의 멋진 이미지이지만 현미경 자체가 그런 이미지를 직접 보여주는 건 아닙니다. 요즘의 과학자들도 프로그램으로 화가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원자나 분자를 볼 수 있는 현미경은 광학현미경과 달리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2017년 노벨화학상은 극저온 전자현미경(cryo-electron microscopy) 기술자에게 수여됐습니다. 그 이유는 생명체의 복잡한 분자 구조를 원자 수준에서 상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화학상을 현미경 개발자에게 수여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전자현미경 기술은 물리학 분야에 가깝고, 현미경은 17세기부터 꾸준히 개선돼온 기술입니다. 게다가 수상자인 세 명의 과학자도 물리학자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화학 분야에서 이 상을 줬을까요?

최근 사용하는 전자현미경은 고전적인 광학현미경과 달리 원자 단위까지 구별할 수 있는 분해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화학 분야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 한계는 단순히 현미경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생물체가 대상인 것이 문제였습니다. 과거 17세기에 훅도 살아 있는 생명체를 현미경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개미나 벼룩 같은 생명체가 현미경 위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게다가 생명체를 죽이면 사체가 변형되기 때문에 온전한 모양을 그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훅이 개미들에게 술을 먹여 재웠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전자현미경은 빛 대신 전자빔을 사용합니다. 전자빔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높은 진공 상태라는 조건이 필수적입니다. 전자빔이 공기 중 분자들에 의해 방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등산하다 보면 높은 곳에서 밀폐된 과자 봉지가 빵빵하게 부푼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보일의 법칙입니다. 외부 압력이 낮아지니 봉지 안의 기체 부피가 커진 겁니다. 진공 상태에서는 압력이 낮아 세포가 산 위에서의 과자 봉지처럼 부풀어 터져버립니다. 바로 세포 안의 물 분자 때문입니다. 결국 전자현미경은 고체 물질의 관찰에는 적합하지만, 생화학 분야에서 바이러스나 단백질, 세포 구조 같은 미시 세계를 자연 상태 그대로 관찰할 수는 없었습니다. 진공이 발목을 잡은 겁니다.

이 기술에 대한 노벨상 수상자는 리처드 헨더슨(Richard Henderson), 요아힘 프랑크(Joachim Frank), 자크 뒤보셰(Jacques Dubochet)라는 세 과학자입니다. 올해 이들의 평균 나이가 70세를 훌쩍 넘으니 3명 다 협업하며 평생을 현미경에 헌신한 겁니다. 헨더슨은 전자현미경을 개선해 데이터를 얻었고 프랑크는 선명한 3차원 영상으로 해석했습니다. 이제 진공이 남았습니다. 뒤보셰는 진공에서 생체 분자가 파괴되지 않게 고정할 기발한 방법을 제공했습니다. 현미경에 물을 넣고 액화질소를 이용해 급속 냉각하자는 아이디어입니다. 생체 분자 주변까지 동결해 고진공 상태에서 분자의 원래 모양을 유지한 겁니다. 그래서 이름을 극저온 전자현미경이라고 지었습니다. 이제 생체 분자를 원자 수준의 해상도로 영상화해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이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일까요? 세포의 감춰진 부분이 원자 단위에서 샅샅이 포착됩니다. 생체 분자의 구조를 정확히 알면 단계별 변화와 움직임으로 그 작동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 변화와 움직임을 조절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신약을 만들 수 있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분자 생물학, 생화학, 의학 분야는 인류에게 흥미로운 미래를 선사할 만반의 준비가 된 겁니다. 이것이 혁신이라고 한 이유입니다. 2014년에도 초고해상도 광학현미경으로 노벨화학상이 수여됐습니다. 아베 회절 한계를 넘어서는 현미경을 만들었지만 그래도 한계는 존재했고, 그 한계를 다시 극복하고 이제는 인간의 한계가 정말로 사라졌다는 찬사가 절대 과하지 않다는 평입니다.

인류는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도전과 실패를 반복합니다. 훅의 진공과 현미경은 3세기가 넘는 동안 지금 3명의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긴 여정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칠순이 넘어서까지 해답을 찾으려 한 노력도 대단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멀리 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연구 환경이 부럽기도 합니다. 우리는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 돋보기나 현미경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세히 볼수록 볼 수 있는 영역은 좁아집니다. 돋보기와 같은 확대경은 현미경도 되지만 뒤집어 보면 망원경처럼 먼 곳을 볼 수도 있습니다. 특히 미래를 다루는 정책에는 두 가지 기능이 균형을 이룬 통찰이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과학계의 연구 환경을 돌아보게 됩니다. 수많은 과학자의 노력에도 우리 스스로 만든 한계에 갇힌 상황입니다. 통찰력과 인내를 가지고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국가적 혜안이 아쉬운 시기입니다.

김병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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