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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김용판 무죄' 변론문 같은 판결문

최종수정 2015.01.30 11:30 기사입력 2015.01.3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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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둘러싼 사법처리 부담에서 벗어났다. 이제 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책을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3월에 출간될 책 제목은 '나는 왜 청문회 선서를 거부했는가'다.

그는 두 차례 증인선서를 거부했다. 2013년 8월 국회 국정원 댓글사건 국정조사 청문회 때와 같은 해 10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경찰청 국정감사 때다. 공직자가 국회 공식석상에서 증인선서를 거부한 것은 자랑할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김 전 청장이 자신의 행위를 책 제목으로 뽑은 이유는 자신은 당당하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1월29일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신영철) 판결은 김 전 청장에게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 축소·은폐 혐의와 관련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검사의 주장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 법원은 검찰 공소장에 담긴 수사결과를 토대로 판단을 내린다. 수사결과가 부실하거나 논리적 비약이 있다면 유죄로 이끌 수는 없다.

김 전 청장의 혐의는 대통령선거를 3일 앞둔 2012년 12월16일 밤 경찰 수사결과 발표와 관련이 있다. 경찰은 대선후보 비방댓글을 단 혐의를 받았던 국정원 직원 김모씨 컴퓨터를 분석한 결과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선 TV토론이 끝난 심야에 전격적으로 경찰 발표가 나왔다. 발표 시점이나 내용은 논란의 대상이었고, 여야 희비는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국정원 직원의 댓글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지만,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난 결과는 이와 달랐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김씨는) 40개의 아이디와 닉네임을 사용해 인터넷에 수차례 접속해 특정 주제의 게시글을 반복해 작성했음이 확인됐다"고 판시했다.

경찰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대선을 앞두고 서둘러 발표한 셈이다. 법원은 "수사발표는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줬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김 전 청장을 처벌할 수 있을까.

범죄의 입증은 검찰의 몫이다. 검찰은 김 전 청장이 특정후보가 당선되게 하려고 경찰로 하여금 실체를 축소·은폐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언론브리핑을 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렇게 주장하면서도 입증노력은 매우 부실했다.

법원은 "어떤 부분이 축소·은폐됐는지 공소사실을 명확히 정리하라는 법원 요구를 받고도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검찰 공소장에 담긴 법리적 흠결과 논리적 부실함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김 전 청장의 행위를 선거운동으로 보려면 목적성·능동성·계획성이 필요한데 검찰이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검찰은 허술했고, 법원은 꼼꼼했다.

법원은 검찰수사의 부실함을 꼬집고 있지만, 검찰과 법원의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법원이 특정인의 공직선거법 무죄를 이처럼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판결문을 내놓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변론문'이 아닐까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꼼꼼한 판결문이다.

그렇게 '김용판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경찰이 대선 직전에 허위의 수사결과를 발표해 결과적으로 대선에 영향을 줬지만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이 돼 버렸다.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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