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도면 으레 사고가 날 법도 한데 그 선배가 사고를 친 걸 본 일이 없다. 사고쳤다는 소문도 듣지 못했다. 술자리에서 흥에 겨워 옆 테이블과 시비가 붙는 충돌 사고도 없었고 술값을 안 치르고 '토끼는' 뺑소니 사고를 낸 적도 없다. 게다가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가 대거리를 하더라도 그저 허허로운 미소만 지으니 텅빈 미소에 담긴 너그러움에 그 선배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기억나는 인물로는 단연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떠오른다. 인수위 시절부터 '단독기자'를 자처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기삿거리가 안된다'고 못을 박거나 '영양가(기사 가치)가 있고 없고는 대변인이 판단할 수 있다'는 등의 말로 구설에 올랐던 그다. 급기야 대통령의 미국 순방 때 'grab(움켜쥐다)'이라는 영어 단어를 온 국민의 뇌리에 새기는 성추행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올해 유독 부각된 여러 갑(甲)들도 빼놓을 수 없겠다. 대리점주에 폭언을 한 본사 영업사원부터 스튜어디스를 시종 부리듯 한 '라면 상무', 호텔 직원의 뺨을 지갑으로 친 '빵 회장'까지 우월적 지위에서 을(乙)을 막 대하는 일들이 봇물이었다. 이런 '절대 갑'들은 그렇잖아도 답답한 국민의 마음을 어지간히 갑갑하게 했다. 여대생을 청부살인하고도 허위진단을 받아 병원에서 호의호식한 한 사모님에 이르러선 공분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이들은 나름 안전장치를 해둔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험(?)을 드는 게 상례인데 그런 보험은 사고가 나는 순간 자동으로 만기 해지된다. 보험을 들어준 이도 같은 부류이기 때문이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선배는 이런 보험이란 게 있을 리 없다. 안전 귀가를 위해 택시를 잡아 꼼꼼하게 안내하거나 그것도 못 믿어우면 댁까지 잘 들어가는지 먼 발치서 지켜봐 주는 후배들이 바로 보험인 것이다. 쌀쌀한 날씨만큼 사회 기류도 스산하다. 브레이크 고장난 그 선배나 꼬드겨 추억이라도 한잔 해야겠다.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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