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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어느 세기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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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세기의 결혼~ 진짜 축하해요 형~~."


대학교 같은 과 동기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자신의 결혼 소식을 알리자 후배가 댓글을 달았다. 남자가 결혼하는 상대는 같은 과 동기. 둘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커플이었다. 1998년에서 1999년으로 넘어가던 무렵 사귀기 시작했다. 심지가 굳은 커플이었다. 2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 번도 '헤어졌다'는커녕 '싸웠다'는 얘기조차 들을 수 없었다. 간간이 듣게 되는 얘기는 '여전히 잘 만나고 있다'뿐이었다.

둘은 상반된 매력을 지녔다. 여자는 첫 인상이 강렬한 타입이다. 1998년 초봄 학부 1년을 마치고 학과를 선택해 동기들 간 상견례가 있던 날 여자는 마지막까지 술자리를 지켰다. 좌판에서 떡볶이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셨다. 남자는 눈에 띄지 않는 타입이었다. 마른 몸에 목소리도 크지 않았다. 그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조곤조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들려줘 매력을 드러냈다.


남자는 대학원을 다니던 중 증권사에 취직했다. 증권사라는 얘기에 모두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2009년 남자를 여의도에서 만났을 때였다. "내년에는 결혼을 해야 할 것 같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그 쪽 집안에서 엄청나게 욕할 것 같다." 남자는 그렇게 말을 하고 또 10년을 보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른다.


다만 이 커플이 드디어 결혼한다는 소식에 열심히 살기를 바라야 할지, 잘살기를 바라야 할지 고민했다. 예전에 사람들은 입사할 때 "열심히 하겠습니다", 결혼할 때 "잘살겠습니다"라고 했다. 직장에서 '열심히' 하면 가정을 꾸려 '잘'살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지금은 입사하면 '잘하겠습니다', 결혼하면 '열심히 살겠습니다'라는 말이 더 익숙해진 듯하다. 왠지 직장에서 잘해야 그나마 가정에서 열심히 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같다. 뭔가 거꾸로 된 느낌이 든다.

20년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둘은 학과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 커플이 됐다. 둘의 결혼식에는 여느 대중 스타의 결혼식 못지않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모처럼 풍족한 사는 얘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되리라.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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