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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이야기] 특수관계인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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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흠 김앤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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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외국인이 최대주주로 있는 국내 상장회사의 임원인 내국인이 철수하는 외국인과의 치열한 협상을 통해 그 지분을 싸게 매수했다. 과세 관청은 내국인이 외국인 지배회사의 임원이어서 '특수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외국인으로부터 시가차액을 증여받은 것으로 보아 거액의 증여세를 과세했다. M&A의 대립 상대방이 특수관계에 포함되어 예외의 여지없이 증여세가 부과되는 상식 전도의 경우다.


[사례 2] 아버지는 1억원에 매수했던 부동산을 아들에게 2억원에 양도하고 양도소득세를 신고했다. 과세 관청은 부동산의 정당한 시가가 3억원이라고 하면서 아버지에게는 2억원의 양도차익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 양도소득세를 추가 부과하고 아들에게는 시가차액인 1억원을 증여 받은 것으로 보아 증여세를 부과했다. 시가 3억원의 부동산을 '증여'했다면 4000만원의 증여세만 부담하면 되는데 세법상 '특수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양도소득세 5565만원, 지방소득세 556만원, 증여세 500만원 등 총 6621만원의 세액이 과세되어 증여보다 더 큰 세부담이 발생하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가상의 사례들이지만 특수관계인에 대해 소득세법상 부당행위계산부인과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증여 규정이 적용되는 전형적 형태로 실무에서 빈번하게 문제된다. 이러한 사태의 기저에는 우리 법제상의 '특수관계인세제'가 자리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특수관계인을 "당사자 쌍방의 이해관계가 대부분 서로 일치하여 거래행위에 있어서도 이를 자유롭게 좌우하여 조세 부담을 경감시키기 쉬운 관계에 있는 자들"이라고 정의했다.


종전에는 개별세법별로 특수관계인 규정을 두고 있었을 뿐 일반적 정의 규정이 없었으나 2011년 비로소 특수관계인 정의 규정이 국세기본법에 도입됐다. 현행법상 특수관계인은 '친족 관계' '경제적 연관 관계' 및 '경영 지배 관계'로 구분된다. 친족 관계는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및 4촌 이내 인척을, 경제적 연관 관계는 임원, 사용인 및 그 자와 생계를 함께하는 친족 등을, 경영 지배 관계는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발행 주식 총수의 30% 이상을 보유하는 등으로 회사경영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를 의미한다.


특수관계인에 대해서는 [사례 2]와 같은 소득세와 증여세의 중복과세 이외에도 국세기본법상 법인의 납세의무에 대한 제2차 납세의무의 부담, 저당권 설정 계약 등이 통정한 가짜 계약으로 취급되는 등 과세 당국의 현미경 레이더가 작동하게 된다. 특히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증여일로부터 5년 이내의 상장 차익 등을 증여세 대상으로 삼고, 특수관계인 보유주식은 20% 또는 30%를 할증평가하는 등 한층 더 과세를 강화하고 있다. 특수관계인 거래에 대해서는 자본이익과세 등 다른 제도를 통해 소기의 규제가 충분히 가능함에도 특수관계인 세제가 징벌적 목적에서 옥상옥으로 운영된다는 근본적 비판이 있다. 특히[사례 2]에서 보는 저가양도의 경우에는 이익분여의 정도가 더욱 큰 '무상증여'보다도 '유상양도'가 더 무겁게 과세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객전도의 형국이므로 증여세 금액을 그 과세한도로 삼는 것 등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특수관계인 세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모호하며 의제적이라는 것이다. [사례 1]과 같은 주식양도뿐만 아니라 적대적 M&A에서의 견원지간까지도 특수관계로 포섭될 수 있고, 일단 부지불식간에 특수관계인이라는 촘촘한 그물망에 걸리게 되면 반증에 의해 벗어날 여지도 없는 구조이다. 기존에는 경영지배관계의 판단에 있어서 발행주식 총수의 50%가 기준이었으나 2012년 국세기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30%로 하향됨으로써 이 문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특히 '지배적 영향력'이라는 주관적이고 애매한 개념이 사용되어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또한 부당행위계산부인 제도를 적용하면서 우리 법인세법은 국세기본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을 보유하는 주주는 모두 특수관계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독일 법인세법은 25%를, 일본 법인세법은 50%를 일응의 기준으로 하여 부당행위계산부인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수주주가 법인에 대해 가격 등의 결정권한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법제는 매우 과도하다는 인상이다.


친족관계에 대한 규정도 마찬가지이다. 6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이라는 것은 오늘날의 핵가족 형태에 비춰볼 때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일례로 미국 세법은 관계자의 범위에 배우자, 직계존속, 직계비속 및 형제자매만을 포함한다. 영국 세법상 친족의 범위도 미국과 동일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숙부, 숙모, 이종ㆍ고종사촌 및 조카 등은 명시적으로 관계자의 범위에서 제외한다. 독일 조세기본법상의 친족의 범위도 형제자매의 자녀, 부모의 형제자매 등 대략 3촌의 범위 내로 한정되어 있다. 특히 우리 세법이 '생계를 함께 하는 자'까지 특수관계인의 범위에 포함시킨 것은 최근의 사회 현실과도 동떨어져 폐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만일 이러한 특수관계인의 범위 조정이 어렵다면 독립적 관계가 충분하게 입증된 경우에는 특수관계인 세제의 적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를 마련해주는 것이 정의 관념에 부합할 것이다.


특수관계인 세제는 일본 세법상 '동족회사행위부인제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1949년 우리나라 법인세법 제정 당시 최초로 도입되어 올해로 우리 법제에 편입된 지 만으로 '70년'에 이른다. 도입 당시 미국의 '관계자'와 같은 중립적 개념 대신 강한 어감의 '특수관계자'로 등장해 조세회피의 대응 수단으로 효과적으로 기능해 온 공적은 크다. 다만, 현시점에서 지적되는 과도한 적용 범위와 과중한 과세에 따른 납세자의 예측가능성 및 과세형평의 침해 문제에 대한 비판도 경청할 필요성이 있다. 고희에 달한 우리나라의 특수관계인 세제가 잘 정비되어 우리의 독자적인 '특수성'만이 강조되지 않고, 비교법적으로도 글로벌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보편성'을 겸비하는 양수겸장(兩手兼將)의 역할을 하기를 고대해본다.


백제흠 김앤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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