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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도시 외딴 섬 '고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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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도시 외딴 섬 '고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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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처음 고시원을 가 본 것은 수능 시험을 마친 뒤 대학 생활을 시작하기 전 쯤 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번화한 시내 낡은 상가 건물 1층에서 시멘트 계단을 걸어 올라가니 미닫이 문이 나왔고, 열릴 듯 말 듯 한 그 문을 힘겹게 제쳐냈다. 미닫이를 여니 서너 개의 계단이 또 있고 그 안에는 황톳 빛 나무 문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던 생경한 구조. 친구가 머무는 방은 창이 없었고, 발을 책상 밑으로 뻗어 자는 식으로 침대가 놓여있었다. 차가 다니는 대로변에서 친구의 방 문 앞에 서기까지는 열쇠 구멍도, 보안 장치도, 누군가의 제지도 없었다.


친구는 아버지의 오랜 폭력을 피해 숨어 다녔다. 가장 친한 사이였던 나 조차도 중학교 졸업 이후 친구의 행방을 찾기 어려웠고, 갓 성인이 될 무렵 당시 유행했던 개인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그의 흔적을 쫓고 메시지를 꾸준히 보내 어렵게 연락이 닿은 것이었다. 그렇게 5년 만에 그 작은 방에서 친구와 마주했다.

불편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친구는 괜찮다 했다. 실제로 표정은 편해 보였다. 그러면서 오늘 만난 일과 앞으로 만날 일에 대해 인터넷 어디에도 올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해왔다. 어머니도 어느 정도 떨어진 고시원에 머무르고 있었다. 왜 같이 살지 않느냐 물으니 함께 있으면 발견되기도 쉽다 했다. 두 사람 살기는 너무 비좁다고. 소리 소문 없이 이사 다닐 수 있고, 전입 신고나 계약서 없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이런 곳 뿐이라고. 반갑고 안타까워 자꾸만 목소리가 커지는 내게 친구는 작게 작게 말하라고 여러 번 주의를 줬다.


얼마 전 고시원에 대한 기획 기사를 쓰고 취재를 하면서 자연스레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15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그 공간 구석구석이 머릿속에 필름처럼 또렷하게 남아있다. 친구는 지금 남 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어 우리는 그 시간들을 웃으며 말할 수 있게 됐다.


서울시가 고시원을 비롯한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한다. 매입 후 리모델링, 스프링클러 설치, 피난 시설 설치, 월세 지원 같은 대책을 내놨다. 그 보다 앞서야 할 것은 이 공간에 누가, 어떤 사연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는 일일 것이다. 한 때는 내 친구의 집이었고, 지난해에는 화재 참사의 현장이었고, 지난주에는 취재 현장이었던 고시원에 세상으로 향하는 창이 나기를 바란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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