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해서 얻어진 시간을 다음 시간을 얻기 위해 보낸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 공무원은 당선과 동시에 다음 선거에서 표를 얻을 궁리를 시작하고, 누군가의 임명을 받는 사람은 임명장을 받자마자 다음 임명장을 받을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찬다. 계약직 노동자는 다음 해에도 계약이 연장될지 안심하지 못해 연말이 다가오면 밤잠을 설치고, 강사법 제정으로 더욱 궁지에 몰린 시간강사는 다음 학기 강의가 끊어질지 몰라 한 학기 내내 불안해한다.
연말이다. 송년회다, 새해 계획이다 분주하고 바쁜 시간들이 이어진다. 한 해를 보내고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해를 계획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한 해를 더 산다는 것이 한 점의 부끄러움을 더하는 일이 아닌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기도했던 청년은 살아온 날만큼 실수와 실패로 만신창이가 된 중년이 되고, 한 해의 시간이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기보다 지키지 못한 부질없는 약속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서는 나이가 됐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언제 삶이 비루하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 청년의 순수함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호기였음을, 누군가를 겨눈 선명한 비판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줄 몰랐던 어리석음이었음을.
그러므로 시간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 오늘은 작년 오늘의 일주기이고, 내년 오늘은 오늘의 일주기다. 지나간 시간의 과오보다 다가올 시간의 허망함이 더 쓰라리다 하더라도, 찬란한 업적과 빛나는 공로로 기억할 만한 인생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래도 시간은 매 순간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진 소중한 것이 아닌가?
대통령에게도, 국회의원에게도, 내년 대학 입시를 앞둔 입시생에게도, 그리고 4년 임기의 주지 소임을 사는 나에게도 시간은 살아가는 만큼 존재한다. 입적한 큰스님에게 일주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지 않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하여도 오늘은 오늘로서 살자. 내일에 저당 잡힌 오늘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생명으로서 말이다.
명법스님 구미 화엄탑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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