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나무들은
벌써 손이 시리다
반쯤은 핏빛 단풍이다
산동네, 좁은 길로
연탄재가 뿌려진다
종점에서 내린 사람들이
비탈길 가로등을 따라 오른다
금 간 유리창 밖으로
일찍 온 바람이
창문을 흔든다
잠긴 자물쇠를 풀고,
스위치를 올린다
키 작은 사람들의 가을,
창문에 걸린 빨강 커튼이 일제히 빛난다
■이 시를 읽고 '그래, 옛날엔 좀 춥고 빈한했지만 그래도 연탄재를 굴려 눈사람을 만들곤 했지'라며 따뜻하고 상냥한 기억을 떠올린다면, 잠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전에 눈길을 가다듬어 여전한 저 "벌써 손이 시"린 "핏빛 단풍"을 새삼 바라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비탈길 가로등을 따라" 산동네를 오르는 "종점에서 내린 키 작은 사람들"을 잠깐이라도 생각했으면 좋겠다. 가을 지나 겨울, 누군가는 전과 다름없이 가난하다. 우리는 그동안 궁핍한 시절을 지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가난을 숨겨 온 것인지도 모른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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