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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전두환과 '갈뫼'…시간이 많지 않다

최종수정 2018.08.28 15:01 기사입력 2018.08.2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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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 '유행가 하나 적어놓을게요. ‘사랑은 어째서 언제나 시간을 이기지 못하는지, 사랑은 어째서 죽음과 꼭 같은 닮은 꼴인지'. 오래 전에 불경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사람이 죽으면 정이 맺혔던 부분들이 제일 먼저 썩어 없어진대요.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 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가요, 여보'
[초동여담]전두환과 '갈뫼'…시간이 많지 않다

황석영 작가의 '오래된 정원'에서, 한윤희가 오현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의 일부다. 소설을 읽은 이들은 알 것이다. '정' '그 안' '이 쪽 바깥', 그리고 '화해'. 이런 평범한 단어들이 얼마나 폐부 깊숙이 파고 들어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지를. 윤희는 여자이고, 현우는 남자다. 5·18을 광주에서 보낸 후 쫓겨다니던 남자가 깊은 시골, '갈뫼'에서 여자와 함께 한 시절을 보낸다. 그 곳엔 아무도 없다. 오직 고목 같은 여자와 바람 같은 남자가, 또 사랑만.

'메디슨카운티의 다리'에서처럼 때로 짧은 순간이 긴 삶을 집어삼키기도 한다. 행복이 죄가 되기도 하는 시절이었다. 남자는 구속돼 18년의 세월을 '그 안'에서, 여자는 '이 쪽 바깥'에서 보낸다. 남자가 '바깥'에 나왔을 때, 이미 여자는 다른 세상의 사람이었다. 여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화해'였고, '여보'였다. 아는 한 가장 슬픈 '여보'다. 임상수 감독은 동명의 영화를 만들면서 기어코 "전두환을 죽여버려야죠"라는 대사를 밀어넣기도 했다.

5·18 학살의 우두머리가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선별적인, 그 때 그 때 다른 알츠하이머일까. 동문 체육대회에 참석해 '각하' 소리를 듣고, 회고록을 출간하기도 했지만 재판에는 나갈 수 없는 병이다.

최근 영화 '신과함께'의 흥행을 보면서 '전설의 고향'을 떠올렸다. 종교는 차치하고라도 한국인의 기본적인 관념에는 내세에 대한 생각이 깔려있는 것 같다. 다음 세상에서 선과 악의 기준으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 그렇지 않다면 순간의 쾌락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이들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죽음에 임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임사 체험처럼 과학으로 규명되지 않는 일들도 끊이지 않는다.

언제, 어느 곳이 됐든지 죄에 대한 처벌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다만 이 땅의 사람들에게 오롯이 남아있는 한들이 원통스러울 따름이다. 이제 알츠하이머까지 걸렸다는 그에게 진실 고백이나 진심 어린 사죄는 난망일 지 모른다. 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과 영혼을 짓밟을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그는 정의의 시대로 가기 위해 반드시 제대로 단죄해야할 상징이다. 수많은 한윤희와 오현우들, 또 '갈뫼'를 위해서라도. 시간이 많지 않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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