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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화학사고 제로화, 불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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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악의 화학 사고는 1984년 인도 보팔 지역에 위치한 유니온카바이드(Union Carbide)사에서 맹독성 화학물질인 메틸이소시아네이트가 누출된 사고다. 28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20만명 이상의 주민이 호흡기장애, 실명(失明) 등의 부상을 입은 대형 재난이었다.
사고 당시 사이렌 경보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고 주민 대피도 지연되면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 사고 사업장에서는 평소 주민 대피 요령 교육을 시행하지 않았고, 화학물질 정보도 주민들에게 제공하지 않아 피해를 더욱 가중했다.

사고 이후 인도 정부는 '환경보호법'에 따라 화학 사고 발생 시 주민들에게 전파하는 통보 조항을 체계화하고, 지역 주민들에 대한 화학물질 정보 제공을 의무화하는 등 국민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 구미 ㈜휴브글로벌사에서 독성 및 부식성이 강한 불산을 탱크로리에서 저장탱크로 이송하는 작업 중 밸브 조작 미숙으로 불산이 누출돼 5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을 입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 작업자는 화학물질 보호 장구를 착용하지 않았고, 불산 누출 사고에 대비한 방제약품인 소석회조차 비치하지 않았다. 사고 발생 초기에 불산 노출 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나 피해 범위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도 없었으며 이로 인해 주민 대피가 지연되면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또한 사고 대응 기관들의 역할 조정이 미흡해 사고 수습에도 큰 혼란을 겪었다.

사고 이후 정부는 화학 공장이 산재한 6개 산업단지(구미ㆍ여수ㆍ울산ㆍ익산ㆍ서산ㆍ시흥산업단지)에 화학합동방재센터를 신설해 부처별로 분산된 화학 사고 예방ㆍ대비ㆍ대응 업무를 한곳에서 총괄 수행하도록 하였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화학물질관리법'으로 전면 개정하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수행하던 화학 사고 관련 업무 전반을 환경부 산하 지방환경청으로 이관해 전문성을 강화했다. 또 화학물질안전원을 신설해 화학 사고 물질을 분석하고 피해 범위를 예측하는 등 화학 사고 정보를 제공하고, 화학 사고 대응 교육과 전문 훈련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도록 했다.
이런 노력에도 지난 4월13일 또다시 경북 영주에 소재한 한 기업에서 화학물질인 육불화텅스텐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사업장은 사고 발생을 지연 신고했고, 관할 관청인 환경부와 지자체 사이에도 사업체가 보유한 화학물질 정보의 공유가 원활하지 않았다. 더욱이 구미합동방재센터 화학사고대응팀은 사고 발생 후 2시간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이로 인해 언론과 지역 주민으로부터 화학 사고 초동 대응이 부실하다는 많은 비판이 제기됐다.

앞서 인도 보팔 화학 사고와 구미 불산 누출 사고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했음에도 아직도 같은 화학 사고 대응 실패를 반복한 것이다. 이번 기회에 중앙 부처, 지자체, 사업체가 다시 한 번 화학 사고 대응 체계를 재점검하고 보완해야 할 것이다.

첫째, 평소에 화학 사고 대응 교육과 주민 대피 행동 요령을 교육하고, 화학 사고 발생 시 사업체는 관할 관청에 즉시 신고해야 한다. 둘째, 화학 사고 대응 기관 간 화학물질 정보 공유가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 지리정보시스템(GIS) 기반으로 사업장별 보유 화학물질 DB 구축은 필수적이다. 셋째, 산업단지 위주로 설치된 합동화학방재센터도 이번 영주 사고가 산업단지 외 지역에서 발생한 화학 사고임을 고려해 확대 설치하는 등 다양한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넷째, 긴급재난문자 최소 발송 범위를 시군구 단위에서 읍면동 단위로 변경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사업체도 평상시 취급하는 화학물질 정보를 있는 그대로 주민들에게 알리고 소통해 초동 대처를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화학 사고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다. 정부와 지자체, 국민의 노력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모두의 노력이 결실을 보아 화학 사고로부터 자유롭고 안전한 나라가 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배진환 행정안전부 재난안전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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