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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칼럼]슬픈 추석, 미운 정치

최종수정 2013.09.17 10:15 기사입력 2013.09.1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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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논설실장

양재찬 논설실장

지난 주말 벌초 겸 성묘를 다녀왔다. 부모님 묘소 위 잡초를 뽑고 잔디를 다듬으며 집안 대소사를 보고드렸다. 생전에도 그랬듯 별말씀이 없으셨다. 산소를 내려오며 돌아보니 잘 가라고 손짓하는 어머니 모습이 어른거렸다. 산 자와 죽은 자는 이렇게 성묘를 통해 소통한다. 산 자들끼리도 함께 벌초하며 회포를 푼다.

지난해 돌아간 큰누이가 잠든 납골당을 찾았다. 봉안함 여기저기에 작은 수첩과 볼펜이 걸려 있었다. 여러 장의 메모지가 붙어 있는 봉안함도 있다. 수첩과 메모지는 먼저 떠난 이에게 남은 가족들이 보낸 애틋한 사연으로 가득했다. 남편이 아내에게, 딸이 아빠에게…. 컴퓨터 글씨와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아닌 볼펜으로 꾹꾹 눌러 쓴 손글씨가 감동을 더했다. 고향을 오가고 납골당을 찾아 편지와 메모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그래도 행복한 축에 속한다.

명절을 맞아 고향에 가 가족들을 만나고 싶어도, 먼저 떠난 이를 찾아가 가슴에 묻어둔 대화를 나누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현대판 난민(難民)이 적지 않다. 몇 천만원 오른 전세보증금을 피해 갈수록 작은 집으로, 변두리로 이사하는 '전세난민'이 그런 경우다. 박근혜정부 들어 4ㆍ1 부동산 대책, 8ㆍ28 전월세 대책이 나왔지만 전셋값은 잡히지 않고 고공행진이다. 한 해 1000만원씩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를 못 구하는 '취업난민'은 10년 넘게 양산되고 있다. 취업이 안 되는 이들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로 연결된다.

전쟁 통에 생이별한 '이산난민'들이 그동안 흘린 눈물은 이미 차례상 술잔을 채우고도 넘친다. 상봉 중단 3년 만에 이달 말 남북에서 각각 100명씩 만난다지만, 기다리는 이산난민이 남한에만 7만여명이다. 그 중 80%가 일흔 이상 노인으로 시간이 없다. 게다가 올 추석에는 '수산난민'까지 생겨났다. 일본발 방사능 오염 공포로 우리 연근해에서 잡는 생선까지 팔리지 않아 수산시장과 생태탕집까지 장사를 망쳤다. 정부 고위 인사와 정치인들이 줄줄이 찾아와 생선을 집어 들고 홍보용 사진만 찍어댈 뿐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들 4대 난민이 명절 때 맘 편히 고향 가고 가족 만나는 것을 포함한 서민의 시름을 덜어주는 일이 정치다. 그러나 현실은 이들을 다독이기는커녕 눈물을 쏟고 화를 돋우게 한다. 선거 때 그토록 '민생(民生)' '화합' '소통'을 외치더니만 선거가 끝나자 온통 '당생(黨生)' '독단' '불통'이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북방한계선(NLL) 논란, 검찰총장 사퇴 배경에 이르기까지 전부 내 탓은 없고 네 탓이다. 여든 야든 국민은 안중에 없고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으로 정치하는 모습이다.
이런 증오의 정치는 국민을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뛰어넘어 '혐오증'에 빠뜨린다. 정치가 밉고 명절이 슬퍼진다. 국민의 정치 혐오증은 정치 불신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정부가 괜찮은 정책을 발표해도 '잘 될까' 시큰둥해하는 '정책의 함정'을 초래한다. 특히 집권 여당이 정치 혐오증을 부추길수록 부메랑으로 돌아와 경제가 나빠지고 사회가 불안해진다.

납골당 봉안함 수첩에서 보듯 이승을 떠나면 끝인 줄 알았던 산 자와 죽은 자의 대화는 오늘도 계속된다. 하물며 살아 숨 쉬며 같은 일을 하는 이들, 그것도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약속한 정치인들의 대화가 왜 그리 어려운가. 양자냐, 3자냐, 5자냐의 형식을 놓고 40여일 핑퐁 게임하다 이뤄진 대통령과 여야 대표 3자회담에선 과연 무슨 얘기를 나눌까.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처럼 그렇게 정치해도 마음이 편합니까? 추석 차례상 머리 민심을 얻으려면 국민 마음부터 헤아리고 민심이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선거는 곧 다시 닥친다.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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