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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연극의 주인공, 그리고 관객

최종수정 2011.01.06 12:04 기사입력 2011.01.0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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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연극의 주인공, 그리고 관객
2004년 10월.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의 당시 나이 95세 때였습니다. 물론 그의 건강은 좋지 않았습니다.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데다 청력도 거의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이미 1년 전부터 언론 인터뷰를 중단한 상태였습니다. 운 좋게 포브스가 인터뷰할 기회를 따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클레어몬트에 있는 자택에서였습니다.

당시 포브스 기자는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깊은 질문 하나가 있습니다.

“선생님의 긴 인생경력중에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까?”

피터 드러커는 의외의 답을 했습니다.

“많았습니다. 과거 내가 쓴 책들보다도 더 나은 책들을 쓰고 싶었는데…”
그리고 1년 후 그는 클레어몬트 검소한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이재규 전 대구대총장이 집필한 ‘이미 일어난 미래’에서 인용)



오늘 아침 그를 떠올린 이유가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지만 남은 것은 아쉬움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에 두고 두고 회자될 명저를 저술한 피터 드러커의 생각이 그랬는데 저는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아쉬움을 간직하며 삶을 꾸려가는 한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보람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또 한 권의 책을 출간하게 됐습니다. 제목은 ‘Economy Restart’(이코노미 리스타트)입니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정확히 읽어내고, 꼬여진 매듭들에 대한 돌파구를 찾아보기위한 생각의 단편들을 담았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경제강국의 목표도 앞당겨 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소박한 마음에서 쓴 글들입니다.

그러나 막상 출간하고 보니 이 책 역시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무대에 연극을 올렸고, 그 주인공이 되기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아직 관객을 감동시키기에는 부족한 게 많은 모습이랄까?

아직 모자라는 저 자신의 내공을 스스로 질책하면서 2011년 새해에 꼭 챙겨야 할 계획에 경제를 보는 눈, 사회를 보는 시각을 깊고, 넓게 하자는 항목을 추가했습니다.

한 권의 책이 나올 때마다 느끼는 소회가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엮는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 조정래 선생님은 평생 글쟁이로 살아오면서, 그 글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며 감동을 주고 있는데도, 스스로 감옥생활 하듯 했다는 말을 합니다. ‘황홀한 글감옥’을 제목으로 한 책까지 내지 않았습니까?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한강’ 같은 작품을 쓴 대문인과 저의 글쓰기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단순비교 한다는 것 자체가 건방진 얘기고, 그 분께는 누를 끼치는 행위죠. 다만 평생을 글쟁이로 살아온 그런 분이 글쓰기를 글감옥에 비유하는데 저 같은 평범한 서생의 글쓰기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그 심정을 읽어달라는 부탁입니다.



지난주 경제레터에서 피아노의 거장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 말씀을 드렸습니다. 청중을 전율케 하는 그의 피아노 연주솜씨, 20세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불멸의 피아니스트 명성이 ‘지칠 줄 모르는 연습’에서 나왔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는 “청중이 있는 한, 그리고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연주를 계속하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저 자신이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평론가들이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관객이 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연습하는 인생을 즐겼습니다.

연습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연습을 통해 정상의 자리를 찾아낸 그에게서 ‘연습의 습관’을 본받으면서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는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더 다듬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짧은 지식, 둔탁한 문장력 때문에 책을 출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최고경영자의 자리에서 왜 스스로 스트레스를 불러들이며 글을 쓰느냐는 질책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중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일까? 모자라지만 계속 연습을 하면 ‘나에게도 글 쓰는 것 때문에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처럼 스스로 행복해지는 순간이 오리라’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늘 연습하는 기분으로 써오다보니 많은 세월이 흘러버린 것 같습니다. 짧은 생각, 사려가 깊지 못하면서도 글을 쓰며 살아온 지 34년이 된 셈입니다.



새로 출간된 책의 머리말을 쓰면서 평소 존경하는 한 분(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逆水行舟 不進卽退. 논어에 나오는 고사성어입니다. 물을 거슬러 오르는 배는 나아가지 않으면 후퇴한다는 뜻입니다. 끊임없이 도전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의미의 경고가 아닐까 다시 한번 되뇌어 봅니다.

그렇습니다. 쉬지 않는 글 연습-그것이 저에겐 도전입니다. 그랬기에 아침에 눈을 뜨면 가슴이 뛰었고, 꿈과 희망을 안은 채 기분좋은 하루를 출발했을 겁니다.

물을 거슬러 오르는 배처럼 나아가지 않으면 내 인생도 하류로, 하류로 떠내려 갈 것이라는 강박관념-그것을 끌쓰기 연습을 통해 희석시킨 시간이 없었더라면 행복한 지금의 순간이 가능했을까?-책이 출간되는 순간 그런 생각들을 해봤습니다.



다시 저의 마음속에 항상 간직하고 있는 조정래 선생님의 말씀, 그리고 아르투르 루빈스타인(Artur Rubinstein)의 평소 습관을 떠올리며 새로 출간된 책 ‘Economy Restart’의 부족함을 변명해 봅니다.



“이 세상에 고달프지 않은 삶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한바탕 살아볼만한 연극입니다.

그 연극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 아닙니까?

그 일이 무엇이든 자기가 성실한 노력을,

최선을 다해 바쳐 이룬 인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입니다.”



“청중이 있는 한, 그리고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연주를 계속하겠다.

나에게 계획 같은 것은 없다. 있는 것은 실행뿐이다.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저 자신이 알고,

이틀을 연습하지 않으면 평론가들이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관객이 안다.

나는 내가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회장 presi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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