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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칼럼]'정의'와 '공정', 한 여름밤의 호기심인가

최종수정 2010.08.23 13:19 기사입력 2010.08.2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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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부는 과연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을까. 우연성과 행운이 좌우할 수 있다.' 최근 방한했던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교수가 정의론의 스승격인 '존 롤스' 교수의 말을 자신의 책 곳곳에서 인용한 점은 흥미롭다.

1년에 평균 4만3000달러를 버는 미국 교사들과 달리 심야 유명 토크쇼 진행자는 3100만달러를 번다. 토크쇼 진행자의 돈 버는 재능이 전적으로 노력의 결과는 아니다. 교사보다 700배나 많은 수입을 그에게 주는 사회에 사는 '행운' 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샌델 교수는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하버드생들에게 재미삼아 형제중 첫째인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약 75~80%가 손을 들었다. 조사 때마다 그 비율은 거의 똑같았다. 첫째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라면 하버드대 진학을 놓고 노력의 결과라고만 말할 수 없다. 우연에 따라 사람의 능력이 달라질 수 있으며 직업적 성공과 부 역시 출생과 사회 여건 등 운(運)에 의해 결정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진학, 성공과 부에 대한 이런 지적은 한국 사회에도 들어맞는다. 부모의 학력이나 재산이 자녀들이 좋은 학교에 가는 요인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이제 누구나 안다.

최근 만난 명문대 의대 출신 의사는 "자신의 졸업동기 가운데 한 사람은 병원차릴 때 진 빚으로 자살했다"고 전했다. 다른 두 사람은 파산했다고 한다. 그는 "공부 잘해 의대를 나와도 집에서 돈을 대주지 않으면 개업이 어렵다"고 말했다. '혼자 자력갱생해야 하는 의사들은 자신들의 출발점이 여유있는 집안 출신과는 다르며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의대 출신이 이 정도라면 고등학교나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사람들의 절망은 어떻겠는가. 삶의 여러 단계에서 좌절감이 빈발해 한국 자살률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불황 때마다 중산층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바닥에서 위로 올라갈 '사다리가 없어지는' 사회로 한국은 접어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광복절 축사에서 '공정(公正)한 사회'를 강조한 것은 이런 한국 현실 진단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공정은 정의의 한 양상으로 오늘날 공정거래법 등에서 두드러진 개념이다. 대통령은 ▲사회 진출과 과정에서 공평하며 ▲패자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며 ▲승자가 독식하지 않고 서민과 약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사회를 역설했다. MB정권은 말처럼 한국을 공정한 사회로 만들 수 있을까.

샌델 교수는 '존 롤스' 교수의 말을 인용해 제도의 공정성은 출생과 행운 등 우연적인 요소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결정된다고 전했다.

과연 우리 사회가 돈을 많이 벌고 기득권이 큰 사람에게 세금을 매기며 불공정한 행위를 막으려고 공정거래위원회 역할을 과거처럼 강화시킬 수 있을까. 부자 부모가 자녀에게 병원과 회사를 차려주는 데 대해 높은 증여ㆍ상속세를 매길 수 있을까. 거대한 자본에 밀려나는 동네 빵집과 구멍가게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과제들은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정부가 일관된 철학을 바탕으로 밀고 나가도 달성이 쉽지 않은 과제다. 40억원대의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노후대책을 위해 빈민층의 쪽방을 사들인 사람, 위장전입과 투기를 밥먹듯 하는 사람들이 정부 요직에 또 들어가는 한 '공정한 사회'는 정치적 구호나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을까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한국 사회에 뒤늦게 일기 시작한 '정의'와 '공정'에 대한 관심이 한여름의 호기심에서 실망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싶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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