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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유로존 '공동의 '몰락'으로?

최종수정 2010.05.08 07:37 기사입력 2010.05.0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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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강미현 기자] 올해로 12년째를 맞이하는 유로존이 출범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그리스 재정위기와 위기의 전이, 이를 막기 위한 유로존 회원국의 고군분투 과정은 그 동안 유로존 내에 내재돼 있던 구조적 약점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유로화가 달러를 넘어서는 기축통화로 거듭날 것이라는 유럽인들의 기대는 떨어지는 유로화 가치와 더불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회원국들 간의 정치·경제적 협력을 통해 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추구한다는 유로존의 탄생 이념과는 달리 회원국들은 서로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서로 발목을 붙잡으며 공동의 몰락을 향해 나아가는 양상. 회원국가들이 투자를 통해 서로 물고 물린 상황에서 유로화는 위기를 막아줄 방패막이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유로화, 유럽통합의 상징 = 유로존은 ‘하나의 유럽’을 통해 미국과 중국 등에 비해 뒤처진 유럽에 활력을 불어넣고, 유럽의 정치·경제적 중흥을 꾀한다는 목적으로 지난 1999년 출범했다.

이후 10년 간 유로화는 서서히 글로벌 주요 통화로 자리를 잡았다. 초기 전자화폐 형태로 금융거래에 사용됐던 유로화는 2002년부터 실물로 유통되며 각 회원국의 화폐를 대신했다. 전세계 외환보유액 중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9년 17.9%에서 2008년 28%에 이르렀다. 유로존 국가 간 교역규모도 1998년 국내총생산(GDP)의 31%에서 2007년 40%로 늘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스 등 유럽 주변국들이 재정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징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2007년 그리스의 GDP 대비 재정적자는 1980년대 중반 미국보다 낮은 수준이었고, 스페인도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투자자들은 유로존이 그리스와 포르투갈 등의 국채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들 국가 국채를 사들였다.
유로화 출범 이후 달러 대비 유로화 추이.

◆ 금융위기로 공동 통화 폐해 부각 = 그러나 금융위기로 유럽으로 유입되는 자금줄이 막히고 재정적자가 불어나는 가운데 유로화는 위기 대응에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았던 영국은 ‘만약 유로존 회원이 됐더라면 실업률이 현재의 두 배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보고서 내용에 안도의 한숨을 짓고 있을 정도.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재정위기 국가의 임금과 물가는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올랐고, 위기 국가들은 통화 정책에 변화를 줘야할 필요성이 생겼다”며 “그러나 이는 유럽 각국이 각각의 통화를 사용할 때 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리스는 자국 화폐인 드라크마화 절상 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제어할 수 있지만 유로화라는 공동의 화폐를 사용하고 있는 이상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공동통화의 폐해는 이 뿐 만이 아니다. 무역적자 확대로 통화가치가 하락할 경우 수출 경쟁력이 향상되고 이로 인해 무역불균형이 시정되는 '통화의 매커니즘'이 공동 통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내에서는 작동되지 않는 것.

이런 문제들이 누적되면서 유럽 내 남부와 북부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국제금융통계(IFS)에 따르면 작년 독일의 경상수지는 GDP 대비 4%의 흑자를 기록한 반면 포르투갈은 GDP 대비 10.2%, 그리스는 8.8%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유럽중앙은행(ECB)은 금리 결정의 시기를 결정하는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컨대 독일의 빠른 회복세를 감안해 서둘러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이는 그리스 정부의 자금조달비용 증가로 이어져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 하나의 유로존, 애당초 힘들었나 = 이런 문제들은 결국 '하나의 유럽은 애당초 어불설성이었나'는 회의를 불러일으킨다. 경제 환경은 물론 정치·문화적 성향도 제각각인 유럽이 하나의 공동체로 잘 굴러갈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무리였다는 얘기다.

이는 유로존의 운명이 시험대에 오른 현 상황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장 독일 국민은 그리스 구제금융에 대해 '우리가 왜?'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스 내에서도 유로존에서 탈퇴하자는 여론이 적지 않다. 이미 유로존은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내밀면서 그 독립성을 크게 훼손했다.

유로존을 하나로 집결시킬 수 있는 정치력의 부재도 논란거리다. 회원국 정상들이 수개월에 걸쳐 우왕좌왕하며 그리스 지원 결의를 도출하는 동안 위기는 이미 포르투갈 등으로 전이됐다. 유로존이 제시하는 인플레이션, 적자 등 경제관련 가이드라인도 사실상 의미를 잃었다. 그리스의 GDP 대비 재정적자는 작년 기준으로 13.6%로 유로존 가이드라인 3%를 크게 웃돌았지만 유로존에는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개성 강한 유로존 회원국들은 강한 리더십의 출현을 꺼려하는 눈치. EU가 지난해 말 EU 상임의장으로 무명의 정치인 헤르만 반 롬푸이 벨기에 총리를 선임한 것이 그 예다. 당시 롬푸이가 유력 후보였던 토니 블레어 영국 전 총리를 밀어낸 것을 두고 EU가 강력한 통합보다는 현상유지를 원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 물고 물린 유로존, 서로 발목 잡는다 = 오히려 유로존이 원래 목표했던 '공동의 번영'보다는 '공동의 몰락'으로 가는 길이 더 가까워 보인다.

전문가 집계에 따르면 유럽 금융권은 그리스 국채 1930억달러, 포르투갈과 스페인 국채를 각각 2400억달러, 8320억달러씩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변국들이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할 경우, 유럽 전체 금융권이 도미노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서로 물고 물린 관계도 복잡하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그리스는 포르투갈 금융권에 100억달러에 달하는 채무를 지고 있고, 포르투갈은 스페인 금융권에 860억달러의 채무를 지고 있다. 또 다른 재정불량국 아일랜드는 독일과 영국 금융권에 많은 빚이 있고, 독일과 프랑스 금융권이 보유하고 있는 스페인 채권은 각각 2380억달러, 2200억달러에 달한다. 그리스의 위기는 그리스만의 위기가 아니며, 그리스 구제금융은 곧 유로존 은행권 구제금융이라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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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현 기자 gro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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