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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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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청계천 공구거리로 알려진 서울 중구 입정동에 세운3구역 재개발을 위한 철거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22일 청계천 공구거리로 알려진 서울 중구 입정동에 세운3구역 재개발을 위한 철거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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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세상의 기운이 모이는 곳". 1968년,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은 종로 한복판에 커다란 주상복합건물을 짓겠다면서 이 곳을 '세운(世運)'이라 이름 붙인다. 그 뒤로 종로, 청계천로, 을지로, 퇴계로 일대로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신성상가, 진양상가가 쭉 준공돼 대규모 상가촌이 만들어졌다. 1970년대에는 첨단, 만물, 신(新)문물, 이런 단어와 어울렸다.
그러나 가장 먼저 바뀐 곳은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가장 낡은 곳이 된다. 일찌감치 자리잡은 공업사, 인쇄소와 섞여 이 일대는 괴괴한 분위기를 풍겼다. 목판에 붓으로 글씨를 쓴 입체감 없는 간판, '빠우(금속표면에 광을 내는 작업, buff의 일본식 발음)'ㆍ'푸레스(압축가공ㆍpress)' 같은 낯선 작업과 어지러운 전깃줄. 조금만 걸으면 빌딩숲이 나오는 거리와 이웃해 종이뭉치를 실은 삼륜차가 골목길을 오가고, 다른 블록에선 쇠를 자르고 용접하는 소리가 울린다.

최근에는 비교적 낮은 임대료에 끌려온 젊은 사람들이 허름한 건물 사이사이에 특이한 분위기의 음식점과 찻집을 열었다. '레트로 감성'인가 뭐시긴가 하는 게 유행하면서 옛 느낌에 환호하는 사람들이 몰렸고, 순식간에 고된 노동과 가벼운 유희가 엉킨 공간이 됐다.

이 복잡한 세운에 요즘 '세상의 불행'이 모이기 시작했다. 공구상가와 공업소, 오래된 유명 식당이 모인 세운3구역 철거가 시작되면서다. 오래된 도시문화유산 보존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서울시가 정비 사업을 일부 보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작은 땅을 가진 토지주, 큰 땅을 가진 토지주, 냉면집 사장, 소곱창집 사장, 고깃집 사장, 공구상가 상인과 장인, 개발을 원하는 사람과 원하지 않는 사람 모두 마음고생하는 얼굴이다. 서울시가 종합계획 수립을 약속한 연말까지, 이들은 모두 크고 작은 고초를 겪을 것이다.
세운상가가 처음 들어선 지역은 원래 일제강점기 말 연합군의 공습 폭격에 대비해 공터로 비워둔 곳이었다 한다. 화재가 커지는 걸 막겠다던 그 곳에서 불길이 시작되고 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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