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가 명료한 그 시절에는 일사불란함이 중요했다. 현대차의 부품은 모비스가 독점 공급하는 식의 폐쇄적 가치 사슬은 기업 경영의 상식이었는데 아이폰 이전까지는 통신사도 콘텐츠를 폐쇄적 공급망을 통해 공급받곤 했다.
최근 기존 질서를 흔드는 혁신은 대개 조립식의 모습이다. 혼자 다 해내는 대신 최고의 재료를 모아 규격화한 후, 신속히 조립해 시장에 내놓는다. 아이폰도 테슬라도 오픈소스도 그런 식이었다. 앱스토어에는 정해진 사양과 규격에 맞춰 약속을 지킨 앱만이 입점할 수 있다.
IT 혁신의 본질은 이처럼 칩을 꽂듯 USB를 꽂듯 이루어지는 조립식에 있다. 빨간 블록은 파란 블록으로 바뀌어도 되고, 1개짜리 큰 블록 자리에 작은 블록 4개를 끼울 수도 있는 레고블록 조립처럼 쉽고 빠르고 유연하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단어에서 건질 것이 있다면 그것은 IT와 무관하리라 여겨졌던 세계마저 앞으로는 규격화된 조립식이 될 것이라 시사하는 바일 것이다. 인더스트리 4.0도 세계의 부품 공장 중국에 놀란 독일이나 일본이 조립식 시대의 리더십으로 공업입국의 자신감을 회복하려는 시도이니 말이다. 무라타나 보쉬 등은 그 대표 사례다.
어쩌면 사람이라는 자원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인재(人材)의 재, 그야말로 목재를 키우듯이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며 정을 들여 사람을 키워왔다면, 축축한 정이 넘치는 온실 같은 일자리 대신 계약에 의해 조립되는 드라이한 일거리가 앞으로는 늘어날 가능성 또한 크다. 온정이 있는 평생직장 대신 성과가 별점으로 계산되기에 누구라도 참여하고 뒤끝 없이 떠나기도 하는 조립식 직업이 늘고 있다.
갈등은 인간이 아직 조립식 블록이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데서 시작한다. 경쟁에서 이겨 누군가를 대체해 자리 잡고 그 조직의 세포로 동화되어 사는 법은 알아도, 불특정 다수의 보완재가 되어 타인을 내게 의존하게 만드는 일은 낯선 일이라서다. 조직의 인재로 충성하며 살 수만 있다면 그 또한 멋진 인생이겠지만, 그런 조직도 그런 자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냉혹한 보완재의 자리로 나아갈 용기는 잘 안 난다. 늘 환경의 변화는 생물의 진화 속도보다 빠른 법이다.
김국현 에디토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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