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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딸깍발이]土실土실 생명의 흙

최종수정 2018.09.10 19:30 기사입력 2018.07.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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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발밑의 혁명'..흙을 되살리려는 농부·학자들의 분투기
농업혁명의 시발점 경작, 흙 건강을 갉아먹는 주원인
돌려짓기·화학비료·생명공학 등 토질개선법 계속 나왔지만..

무엇보다 흙 파헤치기 최소화
땅 피복·다양한 작물 재배하면건강한 흙 만들 수 있어


미국 옥수수 농장에서 옥수수를 수확하는 전경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미국의 초대ㆍ3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은 대규모 농장을 갖고 있었다. 정치적 견해는 달랐을지 모르지만 땅의 상태, 구체적으로 당시 식민지시대 농법에 대해서는 둘 다 걱정했다. 200여 년간 땅을 괴롭혀가며 이어온 담배농사로 토질이 나빠졌다고 봤기 때문이다.

앞서 약탈을 일삼던 영국의 식민지 정책이 17세기 들어 정착으로 바뀌었고,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돈이 되는' 담배농사에 지주들이 골몰하던 시기였다. 담배는 돈을 벌어다 주었지만 땅은 척박하게 만들었다. 갓 개간한 땅뙈기에서 몇 년간 이윤을 남긴 농부는 새 땅을 찾아 나섰다. 농지를 찾는 주기는 갈수록 짧아졌다. 아메리카, 그중에서도 남부지방에서는 토질은 갈수록 나빠지는데 땅값이 싸니 농장규모를 거대하게 키우는 방식이 유행했다.
워싱턴이나 제퍼슨은 자신의 땅을 옥토(沃土)로 가꾸고자 했다. 담배로 농지가 척박해졌다고 지적한 워싱턴은 작물 돌려짓기를 실험하기도 했다. 워싱턴은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을 지내다 은퇴한 알렉산더 해밀턴에게 편지를 보냈다. "토질이 더 악화되면 대서양 연안의 주민이 먹고살기 위해 서쪽으로 옮겨가야 할 테지만, 생산적인 새로운 흙을 찾아 떠나는 대신 원래의 땅을 가꾸는 법을 배우면 지금 그들에게 내주는 게 거의 없는 이 농지를 이익을 가져다주는 땅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이네." 제퍼슨 역시 유럽의 농법을 조사하거나 자신의 농장에서 흙을 살지게 할 방법을 고민했다.

미국 워싱턴대 교수로 지질학을 연구하는 데이비드 몽고메리는 워싱턴ㆍ제퍼슨 이후 비슷한 고민을 한 수많은 이 가운데 한명이다. 10여 년 전 같은 고민으로 '흙, 문명이 앗아간 지구의 살갗'을 썼을 때만 해도 몽고메리 교수는 앞으로 인류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본인 스스로를 "생태 염세주의자"라고 칭했었다. 그런데 이후 전 세계 각지를 누비며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흙을 대하는 사례를 직접 눈으로 보고 살피며 변화 가능성을 확신했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 출간된 '발밑의 혁명'은 앞서 '흙'의 후속편 격으로 실제 흙을 되살리고 있는 농부, 학자, 동료의 분투기를 엮은 책이다.

저자가 보기엔 흙을 파헤치는 일, 즉 경운은 농업혁명의 시발점인 동시에 흙이 건강을 잃게 된 가장 직접적인 행위다. 대규모 개발 사업만이 땅을 괴롭히는 건 아니다. 자연친화적으로 보이는 농사도 흙이나 땅 입장에서는 양분을 내어주는 일이다. 보다 효율적으로 땅을 갈게 해준 쟁기를 일컬어 "인류 발명품 가운데 과거에도 현재도 가장 파괴적인 발명품"이라고 칭한 것도 그래서다.

영양분을 머금은 건강한 흙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수많은 세월이 필요하지만 건강을 잃는 건 순식간이다. 버몬트대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앞서 워싱턴이 살았던 식민지시대 미국 남동부 지역 토양의 침식률은 평균 1년에 1㎜였다. 유럽 식민지가 되기 전 수천 년 동안에는 평균 100년에 1㎜였으니 100배나 빨리 갉아먹은 셈이다. 그는 "농업 여명기 이후 지속된 토질악화의 영향으로 한때 융성했던 문명의 후손은 가난해졌다"면서 "땅을 보호하는 데 실패한 사회는 파멸적인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발밑의 혁명 표지


인류문명이 여태껏 진보했는지에 대해선 저마다 다른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보다 다양한 농업기술을 가다듬으면서 먹거리가 늘어난 점은 사실에 가깝다. 영양분을 섭취하는 게 인간 생존의 근간인 점을 감안하면 인류 역사의 모든 혁명도 농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몽고메리는 농업의 과거를 짚으며 그간 네 차례 혁명이 있었다고 봤다. 첫째가 경작, 그리고 그에 따라 쟁기와 가축 노동력을 도입한 일이다. 수렵이나 채집, 유목하던 인간은 정착해 땅에서 먹거리를 직접 만들었다. 마을이 생기고 도시국가, 나아가 제국도 생겼다.

두 번째는 농부가 토지관리법을 이용해 토질을 개선한 일이다. 돌려짓기를 하면서 흙이 비옥해지도록 유지한 일이다. 세 번째는 기계화ㆍ산업화로 기존 농법을 뒤엎고 값싼 화석연료ㆍ비료를 대거 쓰는 방식으로 바뀐 시기다. 건강을 잃은 흙에 화학비료를 퍼부어 인위적으로 수확량을 끌어올린 셈이다.

이 시기에는 농업도 하나의 산업ㆍ공업으로 치부된다. 농사를 짓는 데도 규모의 경제가 적용돼 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한다. 소규모 지주는 사라지고 도심이주가 늘어나는 '부수적' 효과도 발생한다. 네 번째가 녹색혁명, 농업이 생명공학을 만나는 시기다. 수확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식품산업에선 기업지배가 공고해진다. 독점적인 종자, 농약제품, 상품작물 유통 따위가 오늘날 농업을 대표하는 표현이다.

저자는 여기서 나아가 다섯 번째 혁명이 필요하다고, 아니 이미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핵심은 간단하다. 흙을 건강하게 만들기다. 보존농업 혹은 재생농업, 자연농업으로 불리는데 기본 원리도 단순하다. 흙을 파헤치는 걸 최소화하고, 땅을 피복하고,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면 그걸로 끝이다.

그는 "작은 농장, 큰 농장 어디에든 맞춤화할 수 있고 기존의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면 된다"면서 "이미 이 원리를 실천하는 농부는 자신과 땅 모두에 훨씬 나은 결실을 안겨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설명한다. 앞서 네 차례 혁명이 흙을 수단으로 대했다면 이제는 흙과 농업을 대하는 인간의 철학, 관점 자체를 새로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했다는 "우리는 머리 위 별에 관해 아는 것보다 발밑의 흙에 관해 아는 게 적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5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바뀐 게 없다며 아쉬워했다. 인류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지구의 환경이 혹독해지자, 공학도보다는 농부가 중요해진 영화 인터스텔라의 배경은 공상과학(SF)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두려워진다. 우리가 딛고 서있는 땅이 먹거리를 더 이상 허용하지 않아 생존이 불가능해진다면 과학을 발전시킨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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