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집 처마 아래 오랜 세월 빗물이 딛고 간저 막사발 같은 발자국들
저 빗방울이 파 놓은 단단한 파문들
저 빗방울이 파 놓은 단단한 울림들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오래된 집의 눈길인 저 처마가
던져 놓은
저 동글동글한 무심한 종소리들
■실은 이 시를 읽고 좀 의아했다. 아무리 오래되었다고는 해도 처마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딛고 간" 자리들을 두고 '막사발'이나 '종'을 떠올릴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막사발도 그렇고 종도 그렇고 둘 다 단단하다. 그런 만큼 빗물이 떨어지는 곳이 꽤 단단해야 궤가 맞게 된다. 시에도 "저 빗방울이 파 놓은 단단한"이라고 적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아마도 낙숫물이 기단이나 죽담에 떨어져 사발만 한 자국들을 이루었다는 것인데 그게 도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의 일일지 좀체 가늠이 되지 않아 한참 동안 갸웃했다. 그러다 문득 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싶어 스스로 민망했다.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오래된 집"의 처마를 바라보며 시인은 "저 동글동글한 무심한 종소리들"을 한껏 듣고 있는데, 나는 기껏해야 정말 막사발만 한 자국들이 있을 수 있는지 없는지 따위나 따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비 오면 빗소리나 얻어 들으면 고마운 일인 것을.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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