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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참나무 아래 누워/김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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찡그리지 마
흙이 얼마나 부드러운데…….
자고 일어나면
참나무 뿌리가 내 머리통을 휘감고 있을 거야
얼마나 편안할까?
참나무 뿌리가 뇌 속에 들어오면 당황스럽겠지만 좀 아프겠지만
참나무 뿌리 말고 다른 걱정은 없어지지 않겠니
눈을 부릅뜨고 한들거리는 참나무 가지를 쳐다봐야겠지
쓸데는 없지만 흙이 참 고급이야
누가 나처럼 이렇게 부드러운 흙을 많이 갖고 있겠니
난 이 흙으로 집을 지을 수도 있고
성을 쌓을 수도 있고
남자를 만들 수도 있어
머리에 검불이 붙으면 어떠니
벌레가 귀에 들어가면 어떠니
오늘부터 난 여기서 잘 거야
여기서 살 거야
너도 알다시피 집에 뭐 있니
나는 이제 누구의 식구도 아니야
나는 식구들에게 안 한 이야기를 까마귀에게 한다고
조금 있으면 까마귀들이 몰려올 거야
어제보다 많은 이야기를 지어내야겠지
그러니 집에는 너 혼자 가
누가 나를 궁금해하거든 죽었다고 해

[오후 한 詩]참나무 아래 누워/김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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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분이 좀 심상치 않긴 하지만, 그래도 찬찬히 읽다 보면 참나무도 좋고 느티나무도 괜찮고 어느 넓고 깊은 나무 아래에 가 한참 누워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다. 옷이야 좀 더러워지겠지만 혹시 동네 사람이 지나가다 보고 큭큭 웃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부드러운 흙"을 한껏 껴안고 이리저리 한나절 뒹굴고 싶다. 왜 그러고 있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대답 대신 이 나무의 나뭇잎이 몇 개인지 아느냐고 되묻곤 다시 데굴데굴 구르고 싶다. 정말 왜 그러느냐고? 쉿! 그건 비밀, 나만 아는 비밀!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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