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와인이야기] 포도를 깨끗이 씻어서 와인을 담글까?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원본보기 아이콘
8월 말 포도가 익기 시작할 무렵에는 잎에서 광합성으로 생성된 당이 열매로 이동되기도 하고 줄기와 가지 등에 저장된 당분도 열매로 이동된다. 그러나 9월 말에는 줄기와 가지의 당분이 열매로 가는 이동은 멈추고, 잎에서 광합성으로 생성된 당분만 열매로 이동된다. 이때는 포도나무 자체의 성장은 멈추고 포도 열매의 당분만 농축될 무렵이다. 그러므로 9월의 햇볕이 포도의 품질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클 수밖에 없으며, 이 시기의 광합성은 햇볕을 받는 기간과 강도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마지막 과일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라고 간절히 외쳤던 것이다.

와인을 만드는 곳에서는 수확기에 비가 오면 마을 전체가 암울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한 해 농사를 거의 망치기 때문이다. 수확기 무렵에 비가 온다는 것은 그만큼 햇볕을 받지 못함을 의미한다. 광합성에 의한 당분의 축적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마지막 단계의 성숙이 마무리되지 않아 덜 익게 된다. 그뿐 아니라 수분이 많아 당도는 물론 산도, 타닌, 색소 등 모든 성분이 희석된다. 그리고 포도 알맹이가 커지면서 터지고, 터진 부분에 곰팡이가 끼는 등 이로울 게 하나도 없다. 수확한 포도는 깨끗이 씻어서 와인을 담그지 않는다. 물로 포도를 씻는 것은 포도에 비를 맞히는 것과 동일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포도를 깨끗이 씻어 와인을 만든다고 쓰인 책도 있지만, 세계 어디서나 포도를 씻어서 와인을 담그지는 않는다. 포도를 씻으면 포도 알맹이가 물을 흡수해 당도 등 모든 성분이 희석되며, 더러워진 물이 상처 난 포도에 닿아 더욱 부패하게 하는 잡균 오염의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그래도 포도를 씻고 싶다면 포도를 씻은 다음에 완벽하게 말려서 와인을 담가야 한다. 그러나 포도란 포도 알맹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형상이라서 세척 후 물기를 완벽하게 제거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물로 씻으면 여러 가지 곤란한 점이 많아진다.

그러면 포도에 묻어 있는 농약이나 이물질은 어떻게 될까? 농약은 균을 죽이는 살균제와 벌레를 죽이는 살충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살균제는 농도가 낮아 별 문제가 안 되고, 살충제도 생각과 달리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양이 줄어든다. 성분에 따라 다르지만 살충제의 양이 2분의 1로 줄어드는 시간은 4~20일 정도다. 그래서 포도를 수확하기 전에는 농약을 살포하지 않으며, 외국에서는 잔류농약 검사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효모가 포도의 당분을 알코올로 변화시키는 발효 과정에서 농약이 거의 사라진다.
또 발효란 효모라는 미생물이 생육하는 기간이라서 농약이 너무 많으면 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 발효가 진행됐다는 것은 미생물이 정상적으로 생육하고 번식했다는 증거가 되므로 그 정도라면 사람에게도 해롭지 않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즉 효모의 생육이 안전의 지표가 된다. 또 발효가 다 끝나면 여과하기 전에 와인을 맑게 만드는 젤라틴이나 벤토나이트와 같은 첨가물을 넣어 침전시키고, 여과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농약이 사라지니 농약 문제는 안심해도 된다.

1954년 프랑스의 보르도는 최고의 빈티지가 될 것으로 예측했고 그해 8월 프랑스 농무부 장관은 최고의 와인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보르도 지역의 포므롤이나 생테밀리옹은 실제로 그랬다. 그 지역의 주품종인 메를로는 빨리 수확하는 품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늦게 수확하는 카베르네 소비뇽이 주품종인 메도크에서는 10월8일까지는 날씨가 좋았으나 그다음 날부터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같은 보르도라 하더라도 언제 수확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비(물)가 와인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준철 한국와인협회 회장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국내이슈

  • 때리고 던지고 휘두르고…난민 12명 뉴욕 한복판서 집단 난투극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해외이슈

  • [포토] '벌써 여름?'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포토PICK

  •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