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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투자 인프라사업의 주체는 누가 적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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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외길 건설엔지니어' 이순병의 주문

이순병
50년 외길 건설엔지니어

이순병 50년 외길 건설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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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온 나라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염원과 기대로 충만해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차분히 대처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많습니다. 건설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갑자기 회자되는 통일특수 말고는 국내 사업환경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중소규모의 회사들은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형회사들도 당장은 주택과 해외사업으로 버티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자체적으로 사업을 개발하는 역량이 없으면 회사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지금 정부를 이끌고 있는 분들은 선진국들의 경험에는 뭔가 투명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고 여기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즐겨 인용하는 통계 즉, 우리와 비슷한 인구나 면적을 갖고 있는 선진국들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에는 인프라투자가 GDP의 10% 내외로 나타납니다.
대선 때만 되면 곧 4만달러 시대가 올 것 같았는데 지금 형편으로 보면 언제 4만달러 시대가 될 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더라도 4만달러 시대에 우리나라의 인프라 투자는 한해 200조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준비를 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인프라 구축은 삶의 질이나 안전재해 등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늘 민감하게 다루어집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좋은 인프라는 제조업 경쟁력, 보편적 복지 실현, 관광산업육성 등에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정부는 건설부문 투자를 계속 줄일 것임을 오래전 장기재정계획에서 밝힌 바 있고, 현 정부 들어서는 더욱 축소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최대 고용산업, 특히 서민 경제와 직결되는 건설산업이 하드랜딩하는 것은 일자리 만들기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현 정부에 매우 큰 악재가 될 것입니다. 경제부처에 속하는 국토부장관도 정치인 출신이라 마음 같아서는 임기 중에 떡하니 인프라를 일으키고 싶으시겠지만, 재정은 없고 해외도 시원치 않은 데다 주택은 위험수위를 넘나드니 시름이 깊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나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공공사업에서 적자는 보지 않도록 입찰 방법을 개선하겠다는 것인데, 건설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정치권 스스로가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국민들을 설득할 뾰족한 변명거리도 군색해졌습니다.

이런 어려운 건설시장 환경 속에서 서울 강남의 삼성역에서 경기북부로 가는 광역급행철도 GTX-A라인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신한금융컨소시엄이 선정되었습니다. 민자인프라사업도 공공성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현 정부의 방침 속에서 이번 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니 반갑기 그지 없는 일이고, 사업의 주도권 측면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변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한국의 민간투자인프라사업은 건설회사들이 주도해왔습니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아직도 문제가 많은 제도로 인식하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한국의 민간투자제도를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배우러 오기도 합니다. 요즈음 한국의 대형건설회사들이 디벨로퍼로 변신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시행한 사업의 행태는 운영단계까지 이어가는 진정한 개발사업이 아니라 시공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초기투자비용을 공사원가로 인식한다거나, 준공과 더불어 빠져나가는(Exit) 전략을 사업계획단계부터 설정했습니다.
이번 GTX-A라인을 주도하고 있는 금융사가 어떤 사업전략을 갖고 있는지 속내를 알기는 어려워도, 건설회사들과 다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건설분야 전문가들은 금융사가 사업관리를 잘할 수 있겠느냐는 견해도 내보이지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방법은 많을 겁니다. 앞으로 선진국의 사업관리전문가(PM)들, 특히 유럽쪽 전문가를 고용할 경우 엔지니어링회사나 시공사들은 만만치 않은 시어머니 밑에서 제대로 된 경험을 쌓을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간 민간투자사업에서 건설회사로부터 설계용역을 받아 온 엔지니어링회사들은 시공사가 너무 박하고 시간도 짧게 주는 등 혹사시킨다고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선천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갖고 있는 금융사를 고객으로 맞았습니다. 건설회사를 모시고 일할 때보다 나아진건지, 더 나빠질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예측이 어렵습니다. 금융회사는 시공회사보다 보수적, 합리적, 계약적이므로 책임과 권한을 확실히 하자고 나올 것이고, 과거 건설회사들처럼 대충 혼내고 대충 돈 주는 형태는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적어도 계약상의 책임과 권한에 대한 노하우는 금융쪽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에 더 혹독할 수도 있습니다.

이참에 엔지니어링회사가 주도하고 금융과 대등한 권리와 책임을 나누는 사업구조를 개발해보면 어떨까요. 인프라 수요에 대한 기술과 정보 그리고 전문기술진은 엔지니어링회사들이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장에 주도적으로 진입하려면 금융전문가, 계약전문가, 사업관리전문가 등을 사내에 확보하는(in-house capability) 투자를 해야 합니다.

전문가 자격을 가진 엔지니어들은 그간 공공발주자의 의중에 맞추어 일해 왔기 때문에 자기 소신이 약하고, 자격증 중심의 영업환경에 안주함으로써 도전정신을 많이 잃었습니다.

지금 세계, 특히 미국과 중국의 젊은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나는 유니콘의 탄생에 자극 받아 새로운 사업 만들기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우리 엔지니어링업계 종사자들의 나이가 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인프라에 대한 수요는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민간투자사업의 주체로 나선다면 지금과는 다른 사회적 위상을 갖고 당당한 처우를 받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젊은이들의 일거리 만들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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