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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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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세계 각국 국기를 이제 막 구별하기 시작한 유치원생 아이가 올림픽 경기에서 일본 국기를 발견하고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일본 좋아?" 갑자기 훅 들어온 질문에 나는 무의식으로, 반자동적으로 "아니" 라고 답했다. 그러자 "왜?"라고 다음 질문이 이어졌고 난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설명할지 몰라 잠시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우리 나라가 힘이 약했을 때 힘이 센 일본이 우리 나라 땅을 빼앗았어." 나름대로 눈높이에 맞게 잘 설명했다는 생각에 만족스러워 하고 있던 찰나 아이는 "그럼 나도 이제부터 일본 싫어"라는 말과 함께 경기에 일본 선수만 나오면 "싫어, 싫어"를 외쳤다. "그렇다고 일본을 무조건 싫어하면 안돼"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아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제서야 하얀 도화지에 내 마음대로 먹물을 뿌린 것 같아 죄책감이 밀려왔다. 어떠한 정치적 색채나 선전, 선동을 배제하고 평화와 화합을 꾀하는 올림픽 정신은 커녕 일본은 무조건 나쁜 나라, 싫어해야 하는 나라라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심어준 셈이 됐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선입견, 편견으로 생기는 허위를 우상이라고 했다. 종족의 우상(집단의 공통된 성질에서 생기는 문제), 동굴의 우상(환경, 습관, 교육, 취미 등의 영향으로 인한 문제), 시장의 우상(사람들의 교제, 특히 언어가 사고를 제한하는 것에서 생기는 문제), 극장의 우상(역사, 종교, 전통, 전설 등의 신봉에서 생기는 문제) 등 네 가지 우상을 지적했다. 인간을 우상의 노예라고 지칭한 베이컨은 네 가지 우상을 버려야만 올바른 지식과 문제의 해법을 획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림픽 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 경기에서 한일전은 거의 전쟁 수준이다. 일본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대상이 됐고 부담감은 선수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 1ㆍ2위 일본 고다이라 나오 선수와 이상화 선수의 포옹 장면은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포옹사진에 붙여진 인스타그램 '#한일전은감동이었다' 해시태그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한일전'에 다른 의미와 이미지를 부여했다.
올바른 역사관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도 선입견을 버리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외교 관계를 바라봤으면 한다. 특히 평화 외교의 장인 올림픽에서는 더욱 그렇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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