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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버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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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설 연휴가 끝났다. 채 가시지 않은 덕담(德談)의 여운을 한 켠에 쌓아 올리고 귓전에서 요란하게 울리는 스마트폰 알람의 도움을 받아 다시 밥벌이에 나선다. 두려움이 더 크지만 지난해보다 무언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설렘을 안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설날인 16일은 어떤 이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서시', '별 헤는 밤', '참회록', '길', '십자가', '쉽게 쓰여진 시'를 남긴 시인 윤동주 서거 73주기였다. 그는 1945년 2월 16일 광복을 6개월 앞두고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29세로 세상을 떠났다. 12월30일이 생일이니 그는 식민지 조선인으로 27년 하고 47일을 살았다. 지난해는 그가 태어난 지 100년째 되는 해였다.
치열한 자기 성찰이 담긴 그의 시는 사후 70년이 넘은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읽힌다. 이육사, 한용운과 같은 민족 시인의 계보에 포함돼 널리 알려진 덕도 있겠지만 시대를 초월하는 힘은 일제 강점기 젊은 조선 지식인의 고뇌와 번민이 은연 중 작동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다. 일상 속 부조리를 경험하면서도 목소리 내지 못했던 수많은 존재들의 내면이며, 십수년 적폐를 목격하고도 스스로 입을 닫아 버린 지식인의 자화상이며 참회록이었을 터다.

정지용의 시를 좋아했다는 윤동주는 1940년 동시 쓰기를 중단했다. 펜 대신 총을 들겠다는 친구 송몽규의 모습에 비친 자신을 한 없이 부끄러워했고, 우물에 비친 자신의 무기력함에 분노했다. 이후 연희전문 졸업을 앞두고 엮은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절필(絶筆) 후 다시 쓰기 시작한 시 18편에 '서시(序詩)'를 맨 앞에 붙여 만든 참회이며 다짐의 기록이었다.

윤동주는 '서시'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워'하고,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 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슬픈 천명(天命)을 말하던 그는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며 새로운 걸음을 뗐다.
새로운 여정이 시작됐지만 여전히 상식과 비상식,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고뇌하고 번민해야할 일들이 산재해 있다. 그것은 권력을 쥔 자들, 의사봉을 든 자들, 재판봉을 든 자들, 펜을 든 자들에게 주어진 길이다. 그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윤동주의 시가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힘의 근원이 그렇듯, '인간의 보편적 감정'에 귀를 기울이고 과거의 부끄러움을 깨닫는 일일지 모른다. 첫 걸음은 무거운 법이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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