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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온유의 느낌표] 티베트 불교 지도자의 가슴 따뜻한 성경말씀

최종수정 2017.12.29 16:02 기사입력 2017.12.29 15:28




[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열한 살쯤이었을까. 담임 선생님이 "절에 가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답했다. 교회에 다니는 내가 절에 가 보았을 리 없었다. 늘 날 놀려대던 짝꿍이 깔깔대며 말했다. "그럼 얼마 전에 갔다온 불국사는 뭐냐?" 아차.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불국사는 내게 견학가는 유적지였을 뿐 불교 신자들이 오가는 절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하굣길을 뚜벅뚜벅 걷는데 문득, 죄를 지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절에 가다니. 하나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실까." 아마도 그땐 기독교가 불교의 반대고, 기독교는 맞고 불교는 틀리다고 생각했던 듯 하다. 예수님은 분명히 '(모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성경을 모르는 나로선 그 참뜻을 곡해했던 셈이다. 사실 오로지 나의 무지 탓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교회에선 다른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되어온 게 사실이다. 가르쳐주지 않으니 모를 수밖에 없었다.

신간 '선한 마음 : 달라이 라마의 성경 강의'는 열한 살의 나에게 읽어주고 싶은 책이다. 책은 제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가쵸가 1994년 영국 북런던에서 열린 '존 메인(신부) 세미나'에서 예수의 사복음서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담았다. 티베트 불교의 지도자이며 정신적 스승인 달라이 라마가 예수의 이야기를 가르쳐주다니, 역사적이면서도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그는 "종교가 다르면서도 서로를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려면 각 종교가 가진 근본적 차이점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며 "그렇게 할때 각 종교의 가치와 그것이 가진 가능성을 깨달을 수 있다"고 했다.

이 강의가 열린 북런던의 미들섹스대학 강의실에는 가톨릭 대주교부터 인디언 원주민 주술사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의 종교인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성경의 가르침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 할 뿐 아니라, 강의 내내 풍기는 상대방을 향한 존중심과 부드러운 유머로 청중을 휘어잡았다. 그는 우리에게 다른 종교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 존재는 매우 다양한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종교가 다양한 사람들의 욕구를 다 만족시켜 줄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신앙들을 한 종교로 통일시키려고 한다면 각각의 독특한 신앙이 가진 다양성과 풍요로움이 사라질 것 입니다."

그는 청중을 설득하려 들거나 정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관심은 오직 이것이다. '그리스도교 수행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결코 어느 한 사람이라도 그리스도교인의 마음에 의심과 혼란의 씨앗을 뿌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갖고자 하는 자에게는 겉옷까지도 갖게 하라. 또 누구든지 너를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라." 달라이 라마는 마태복음 5장38절~42절을 읽으며 불교에서 널리 가르치는 자비와 인내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이 구절을 불교 경전에 살짝 끼워 넣는다 해도 아무도 모를 정도"라 웃으며 말했다. 중요한 것은 두 종교가 공통된 목적을 갖고 있음을 깨닫는 것. 달라이 라마는 모든 종교의 목적은 성숙하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을 탄생시키는 데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간곡히 호소했다. "제발 반반 섞어 믿지는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교를 통해 영적 성장을 이루라 했고, 불교인이라면 순수한 불교인이 되라는 이야기였다. "세상의 종교들 속에는 저마다 우리가 순수하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메시지가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 지음/류시화 옮김/불광출판사/1만5000원>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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