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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여성 서양화가는 어쩌다 행려병자로 죽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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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신여성 나혜석 69주기

경기도 수원시 인계동의 '나혜석 거리'. 다양한 음식점과 백화점, 영화관 등이 있는 번화가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을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 나혜석의 삶도 처음엔 이 거리의 불빛만큼 화려했다. 하지만 그는 행려병자로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여기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10일은 화가이자 문인, 독립운동가였던 나혜석의 69주기다. 화가였고, 문인이었지만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기록은 "본적, 주소 미상. 연령 53세. 신장 4척 5촌. 체격 보통. 기타 특징 없음. 헌 옷에 소지품 없음. 사인은 병사. 사망 장소 시립 자제원"이었다.
나혜석은 지금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는 수원에서 1896년 태어났다.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진명여자보통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면서부터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가 서양화를 배웠다.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뒤 열었던 1921년 개인전에는 5000여명이 몰렸고 20여점이 고가에 팔릴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나혜석은 변호사 김우영과 결혼했고 이 결혼은 신문에 날 정도로 화제였다. 그가 결혼하면서 남편에게 요구했던 조건은 세 가지였다고 한다. 지금처럼 평생 사랑해달라는 것,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시어머니와 따로 살겠다는 것. 이때가 192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조건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나혜석의 인생은 남편과 떠난 세계여행을 통해 바뀌기 시작한다. 여성으로서 새로운 자각을 하게 되지만 여행 중 만난 최린과의 불륜 때문에 결국 이혼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이혼 후 '이혼고백서'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나혜석의 이혼고백서는 남성 중심의 사회를 고발하면서 스스로 독립된 주체로 살겠다는 선언이었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나혜석은 이를 발표하고 불륜 상대인 최린에게 정조 유린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사회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혼고백서와 정조 유린 손해배상청구를 당시 조선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혜석은 고립됐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절과 양로원 등을 전전하며 그림을 그리다 결국 무연고자로 죽음을 맞게 됐다.

나혜석은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고 엘리트 신여성이었기에 혜택 받은 화려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조선 사회의 봉건적 인습에서 비롯된 남녀 불평등 문제를 제기한 여성운동의 선구자였기에 결국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그는 자신이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에 희생됐다고 했다. 나혜석을 행려병자로 죽게 한 부조리한 관습과 제도들은 지난 지금 얼마나 개선됐을까. 그의 69주기에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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