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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의 정치학]①원치않게 세워진 '우상'에 상처받는 '역사적 인물'들

최종수정 2017.11.14 11:28 기사입력 2017.11.14 11:00

'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이 제작한 높이 4.2m 크기의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1917년 11월14일생으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을 두고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의 근대화를 이끈 '국부(國父)'라는 긍정적 평가부터 적폐의 근원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엇갈리면서 4m 남짓한 동상의 건립을 두고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사실 동상 건립 찬반 논쟁이 심화되며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가 양 극단으로 치닫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논쟁 속에서 정작 인물 개인의 객관적 평가와 공과(功過)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왜곡되기 쉽다는 점이다.

지난 13일,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기증식이 열린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동상 설치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이 충돌했다. 이날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은 '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으로부터 이 모임이 미리 제작해둔 높이 4.2m짜리 박 전 대통령 동상의 기증 증서를 전달받았다. 동상 건립 추진 측에서는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 6·25때 한국을 도와준 트루만 대통령, 대한민국 5천년 이래의 번영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의 공적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는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시위도 열렸다. 민족문제연구소와 '박정희동상 설치 저지 마포비상행동'이 동상 설치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박정희는 민족을 배반한 친일 군인이자 임시정부의 반대편에서 교전을 수행한 명백한 적국 장교"라며 "청산의 대상이 될지언정 절대 기념 대상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1991년, 탄생 100주년에 맞춰 '인촌김성수선생탄신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 세운 김성수 동상 모습(사진=두산백과)

사실 이런 동상 건립시비는 어제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친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다면적인 측면을 가지기 때문에 '공과(功過)'를 두고 평가가 극명히 엇갈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동상 뿐만 아니라 최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김활란 동상, 서울대공원 내에 있는 인촌 김성수 동상 등은 예전부터 존립과 철거를 두고 논쟁이 이어져왔다.

이 '동상 논쟁'의 아이러니는 정작 문제의 핵심에 놓인 역사적 인물이 스스로 원해서 지어진 동상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북한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역사적 인물 스스로가 자신을 우상화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보통 그 인물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인물들이나 제자들에 의해 추대된 경우가 많았다. 본인은 개인숭배를 극도로 싫어했지만, 원치않게 추모된 인물들도 적지않다.
영화 '굿바이 레닌'에서 독일 통일 당시 철거되는 레닌 동상 모습이 나온 장면(사진=영화 '굿바이 레닌' 장면 캡쳐)

대표적인 인물로 이번 러시아혁명 100주년의 중심인물이자 구 소련의 국부(國父)로 추앙받았던 레닌이 있다. 레닌은 생전에 개인숭배를 비롯한 우상숭배를 극도로 경멸했으며 죽기 전 본인의 어머니가 묻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묻어달라고 유언까지 남겼지만, 그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은 스탈린에 의해 철저히 신격화됐다. 그의 유언과 달리 그의 시신은 영구보존처리돼 유리관에 안치됐고, 구 소련 및 동구권 전역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로인해 러시아에서는 구 소련 붕괴 후 수많은 레닌동상이 철거되고 참수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레닌동상은 러시아에만 5000개 이상 남아있다.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라 존경받는 호찌민(胡志明) 역시 사후 시신이 영구보존됐고 베트남 곳곳에 동상이 세워졌지만, 이는 본인의 뜻은 아니었다. 호찌민은 유언장에 "내가 죽은 후에 웅장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내 시신은 화장해달라"고 밝혔고 평소에도 숭배받는 우상보다는 국민들에게 친근한 '호아저씨'로 남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의 소망과 달리 베트남 정부는 하노이 바딘 광장 앞에 대규모 영모를 짓고, 그의 시신을 영구보존처리한 뒤 레닌처럼 유리관에 넣고 말았다.

이와같은 우상화는 오히려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방해하는 요소가 되곤했다. 신격화가 이뤄지면서 과거사가 묻혀버리거나 과오가 덮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이에 대한 반발로 업적보다는 과오만 지나치게 부각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역사적 인물의 행적 자체가 보여주는 시대상과 입체적인 평가를 방해한다. 당사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세워진 동상(銅像)이 양극단의 이몽(異夢)을 만든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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