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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꽈리 부는 소년 같은/최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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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새소리에 눈을 떴다. 아파트 숲인데 어디선가 꽈리 부는 소리 같은 게 들린다. 새가 부리 안쪽 혀 밑을 부풀려 꽈르르르 꽈르르르 우짖고 있다. 요즘은 꽈리도, 꽈리 부는 사람도 없다. 잘 익은 꽈리 열매를 만지작대다 바늘로 속을 파내 꽈리 만들려다 망쳐 버리고, 사탕 사면 덤으로 주던 고무 꽈리, 구멍을 아랫입술에 대고 윗니로 눌러 터져 나오던 탄성의 소리, 입술에 닿는 그 팽팽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는데 어쩌다가 아무도 꽈리를 불지 않게 되었나, 꽈리나 불며 놀게 내버려 두는 나라, 법도 없지만 눈물도 없는 저 새들의 나라.

 어젯밤에 읽었던 끔찍한 실화, 그는 발가벗겨져 3일 간 매를 맞고 머리, 어깨뼈, 이빨이 부러졌는데, 보안 요원이 또 바늘 같은 송곳으로 손톱 밑을 찔러 대며 너 북한에서 온 간첩이지, 자백해 이 새끼야, 자백하라구, 살려 주세요, 제발, 간첩은 아니지만 간첩인가 봐요. 고문에 못 이겨 혼절했다 깨어나면 또 두들겨 맞고 결국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다 끝내 죽어 간 사람들, 숱한 그런 사람들, "캄보디아 폴포트 정권은 2백만을 희생시키고도 정권을 유지했어, 우리도 백만 명쯤 못 죽일 것 같으냐" 그러면서 헬리콥터에서 내리꽂았던 기총소사, 이 나라는 널 도우려고 생겨난 게 아니야, 너 하나 입 닥치게 하고 빠뜨려 죽이는 거 일도 아니야, 정신 차려 이 새끼야, 꽈리나 불며 놀게 내버려 두자고 생겨난 국가는 없어. 새들에게나 주어진 나라 향해 꽈리 부는 소리, 헛소리하지 말고.

[오후 한 詩]꽈리 부는 소년 같은/최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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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벽돌집처럼 단단하게 경험하고 있는 '국가(nation)'라는 개념은 근대 이후 서양의 발명품이며, 일본을 통해 수입된 것이다. 그것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자명한 것도 아니다. 더욱이 '국가'는 그것을 상상한 이들에 의해 그 품목과 내용물이 매번 바뀌어 왔다. 일례로 우리의 경우 개화기 때 '국가'의 최전방에 호출되었던 위인은 비스마르크였는데,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는 이순신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왜일까? 그 까닭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폭력적이라는 점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국가를 지양하는 개념을 창안해 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국가는 현재 우리의 삶을 유지하고 지탱하는 기능을 어느 정도 그럴듯하게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에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살인과 폭압은 분명 그 잘못을 끝까지 따져 처벌해야 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것은 다른 말 필요 없이 죄악이니까 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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