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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의 출산, '보호 받지 못하는 아이들' (종합)

최종수정 2017.10.19 14:20 기사입력 2017.10.1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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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사각 지대 속 방치 된 미성년자 출산
미성년자가 출생신고해도 행정적 조치 없이 가능
강간 첫 피해 10명 중 6명 '미성년자'
피해 상담 요청 늘어나는데 구제 어려워

미성년자의 출산, '보호 받지 못하는 아이들' (종합)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이관주 기자] 14살 때 '어금니 아빠' 이영학(35)씨를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진 아내 고(故) 최모씨는 2003년 이모(14)양을 낳았다. 당시 이씨는 21살이었지만 최씨는 17살, 미성년자였다. 후원과 관련된 언론 인터뷰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최씨의 모습이 이씨와 함께 나오기도 했지만 최씨의 출산에 의문을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최씨는 지속적으로 성폭행과 성매매, 가정폭력을 겪어 왔지만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 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수원에서는 50대 남성이 의붓 손녀를 성폭행해 아이까지 낳게 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19일 수원지법에 따르면 재판부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에 의한 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53)씨에 대해 징역 20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프로그램 16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피해자가 초등학생일 때 시작된 성폭행은 고교 진학 후까지 무려 6년간 지속됐으며, 이 때문에 아이를 두 명이나 출산했다. A씨는 2011년 가을 부모의 이혼으로 함께 살게 된 B양을 "할머니에게 말하면 죽이겠다"라고 협박해 몸을 만지는 등 추행한 데 이어 이듬해 초부터 올해 초까지 경기도 자택과 자동차 안에서 수차례에 걸쳐 B양을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무도 묻지 않는 미성년자의 출산='어금니 아빠' 이영학씨 부인이 17세의 나이에 딸을 출산한 사실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미성년자에 의한 출산 등을 관계기관이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에 의한 출생신고를 의무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법상 출생신고를 할 때 부모의 연령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출생신고는 혼인신고 여부와 상관없이 할 수 있고 엄마가 미성년자라 해도 신고가 가능하다. 대법원 관계자는 "가족관계등록업무와 관련해 엄마가 미성년이라고 해도 법원에서 특별히 취하는 행정조치는 없다"며 "미성년자인 경우 출생신고의무자는 아니며 엄마의 친권자나 후견인이 의무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행정자치부는 각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단순 업무 절차만 대리하고 있고 여성가족부와 보건복지부는 출생신고는 대법원에서 하는 업무라며 관계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미성년자에 대한 출산 등을 미리 알 수 있도록 의료기관에 의한 출생신고를 의무화하자는 법안이 발의 돼 있다.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6월27일 대표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병원 등 아이가 태어난 의료기관이 출생증명서를 의무적으로 지방자치단체 등에 송부하도록 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행법은 출산한 자녀의 부모가 의사·조산사 등 분만에 관여한 사람이 작성한 출생증명서를 첨부해 1개월 이내에 출생지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애초 출생신고가 누락되는 아동을 방지하기 위해 발의된 법안이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성범죄로 의심되는 미성년자에 의한 출산에 대해서도 추적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의료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의무적으로 아이의 성별, 출생 연월일시 및 장소, 부모의 성명·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신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의 출산, '보호 받지 못하는 아이들' (종합)

실제 미성년자에 의한 출산은 적지 않은 수준이다.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연령별 분만 및 유산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 18세 이하 미성년자에 의한 분만은 1399건에 달했다. 성 의원은 "청소년의 분만은 다양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만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범죄 발생건수 늘어나는데 현장 일손 부족=그러나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및 구제 시스템 또한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성범죄 발생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강제추행 범행은 2014년 1만4611건, 2015년 1만5069건에서 지난해에는 1만6054건으로 매년 1000여건씩 늘었다. 죄질이 나쁜 강간 및 유사강간도 같은 기간 5453건, 5669건, 5738건으로 조금씩 증가했다. 이를 반영하듯 민간에서 운영 중인 성폭력 상담소를 통한 상담 건수 또한 2007년 2만5443건에서 지난해 10만1028건으로 급증했다.

여성가족부의 '2016년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성범죄 피해 양상은 더욱 충격적이다. 강간 사건의 첫 피해연령은 미성년자인 19세 미만이 63.1%로 가장 많았다. 이어 19~35세가 28.6%를 차지했다. 가해자는 '아는사람'이 77%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발생장소는 집(36.6%), 대중교통시설(18.8%), 상업지역(17.6%) 등 순으로 집계됐다. 가장 안전해야 할 장소에서 아는 사람에게 성범죄를 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젊은 여성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을 지원할 시스템 또한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이다. 피해신고 접수는 물론 피해자 질병치료, 수사기관 조사 지원, 법원 동행 등 다양한 지원을 펼치는 '성폭력 상담소'는 2007년 202개소에서 올해 상반기 기준 162개소로 10년 새 20% 가까이 사라졌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들의 몫이다. 권현정 탁틴내일 아동청소년 성폭력상담소장은 "예방교육으로 성폭력 인식 수준이 높아져 신고율은 높아졌지만 상담소에 일이 몰리다보니 물리적 한계 때문에 처리가 늦어질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피해자를 발굴해야 할 현장의 상담원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상담소의 경우 정부 예산은 1년에 약 7300만원이다. 이 중 20%를 운영비로 쓰고 나머지를 인건비로 써야 한다. 단순 계산해보면 5000여만원으로 소장 1명, 상담원 2명의 월급을 책정해야 한다. 1인당 160여만원의 월급이 돌아가는 셈인데 호봉을 따지지 않았을 때의 얘기다. 밀려드는 상담과 업무 처리로 밥 먹듯이 하는 게 야근이지만 수당은 없다. 경기도 한 성폭력센터 관계자는 "정부는 상담원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과 거기에 맞는 매뉴얼, 시스템까지 갖추라고 요구하면서도 처우는 바뀌지 않는다"며 "열정으로만 일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신고 없이 적극 개입 어려워=미성년자의 출산 등 범행이 의심되는 경우조차 경찰의 적극적 개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점도 한계로 꼽힌다. 2013년부터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폐지되면서 피해자의 의사 여부와 관계없이 경찰 수사와 처벌은 가능해졌으나, 신고가 없다면 범죄사실 인지가 어려운 탓이다. 한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성범죄의 경우 당사자의 신고 없이는 수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정황만으로 범죄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만큼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홍보 부족으로 피해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정책들을 정작 잘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2016년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 성폭력 관련 법 및 제도에 대한 인지도에 대한 질문에 여성 71.5%는 '들어본 적은 있지만 내용은 잘 모른다'고 응답했다. '전혀 모른다'가 15.2%로 뒤를 이었다.

김미순 성폭력상담소협의회 회장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성폭력 지원 정책이 생기는데 기존에 운영 되어온 성폭력 상담소에 대한 구체적인 운영 정책은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며 "제도권 안에서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사실상 국가가 그 책임을 민간 상담소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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