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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 칼럼]혼용무도보다 더한 이 어두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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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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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은 지난해 말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선정해 파란을 일으켰다. 혼용무도는 고려대 이승환 교수가 추천한 것이라고 했다. 혼용무도는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으로 각박해진 사회분위기의 책임을 군주, 지도자에게 묻는 말이라고 했다.

혼용은 흔히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지칭하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함께 일컫고, 무도는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묘사한 논어의 '천하무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성어를 추천한 이 교수는 "연초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온 나라의 민심이 흉흉했으나 정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하고 무능함을 보여줬다. 중반에는 여당 원내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사퇴압력으로 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이 크게 훼손됐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국력의 낭비가 초래됐다"고 지도자의 무능력함을 꼬집었다고 한다.
혼용무도는 교수신문이 2001년부터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 중 비판 강도가 가장 높은 쓴소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교수신문은 박근혜정부 들어 정치권이나 위정자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사자성어를 뽑았지만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거나 대통령을 지목한 것으로 이해될 만한 사자성어를 선택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교수신문은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2013년에는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을 가진 '도행역시(倒行逆施)', 2014년에는 '지록위마( 指鹿爲馬)'를 각각 골랐다. 지록위마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하고, 위 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마음대로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세월호 참사, 정윤회 국정개입 사건 등 정부가 사건 본질을 호도 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지난해엔 비판의 강도를 더 높인 것이다.

그런데 올해 나라 상황은 어떤가. 혼용무도가 무색할 지경이다. 나라 처지는 어둡다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칠흑 같은 어둠의 장막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다. 북핵위기와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문고리 3인방의 국정농단에 이어 이번에는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터졌다. 최순실 사태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최순실이 누구인가. 정윤회씨의 전 부인 아닌가. 범의 힘을 빌려 행세를 한 여우가 아니라 범인양 행세한 여우가 아닌가. 최순실은 대통령을 내세워 국정을 주물렀다. 심지어 대통령 행세를 하며 청와대 전 부속비서관에 직접 지시를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 일파들은 국가를 사익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대통령이 이를 방조한 탓에 민주주의는 파탄 났고 국격은 땅에 떨어졌으며 대한민국은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됐다. 혼용무도가 극에 도달했다는 야당 대표의 지적은 늦어도 한 참 늦다.

두 번이나 국민 앞에 사과한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박 대통령은 검찰수사에 응하고 특검수사도 수용하겠다는 뜻도 믿고 싶다. 그럼에도 민심이 들끓고 있는 이유를 박 대통령과 청와대, 여당지도부는 먼저 헤아릴 것을 촉구한다. 지난주 말 청와대를 코앞에 둔 광화문 광장에 모여 '하야'와 '퇴진'을 촉구하는 수십 만 국민들의 심정을 먼저 헤아릴 것을 당부한다. 대한민국을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만든 주역인 국민들은 국민권익을 위해 나라를 이끄는 훌륭한 대통령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할 것을 권한다. 이 어둠을 걷어내는 훌륭한 대통령이 되고 안 되고는 대통령에게 달려있다.


박희준 편집위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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