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의 중소기업 기술 편취가 도를 넘어 서고 있다. 기술 자료를 제공받은 뒤 거래를 끊고 기술을 살짝 변형해 자체개발한 기술인양 써먹는 대기업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에서만 기술 편취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아니다. 금융업계에서도 이 같은 유형이 반복된다. 보안업체 C사는 D은행에 보안솔루션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2014년 3월 제공했다. 이후 D은행은 올 4월 세계 최초로 보안관련 상품을 개발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에 C사는 보안상품이 자기기술이라며 권리구제를 여러 기관에 요청했다. 급기야 D은행은 C사 대표를 형사 고소했다.
그런데 대기업의 기술 편취는 주로 계약 전에 이뤄지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관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전문적 지식을 갖춘 인력이 없어 감정을 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구제를 받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는 격이다. 앞의 B사는 A사를 특허침해로 고소했으나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받았다. 이와 별도로 B사는 A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결국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아울러 기술 편취를 밝혀내거나 처벌할 근거 법령이 미비돼 있는 것도 문제다. 하도급법에는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요구할 수 없도록 돼 있지만 피해는 주로 계약 체결 전에 나타나고 있어서다.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 기술 침해를 규정하는 조항이 없을뿐더러 담당 관청이 실질적인 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조차 없다.
박 변호사는 "법률적 제재 범위를 좀 더 세분화하는 한편 특허청에 조사권한을 줘야 한다"며 "현행 하도급법도 계약체결 전 단계에서의 기술편취 행위유형을 추가 신설해야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의욕을 북돋울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재연 기자 ukebid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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