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1시간 전. 드르륵 쿵 소리에 불현듯 눈을 떴다. 꿈결에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또 다른 소음이 신경을 자극한다. 무언가 긁히거나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발소리와는 전혀 다른 층간소음. 간혹 휴일이면 아침저녁으로 들리던 익숙한 옥타브의 사운드이지만 이날의 새벽 급습은 당혹스러웠다. 눈을 질끈 감고 양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세어보다가 급기야 개, 소, 말을 수십 마리 불러냈지만 결국 포기하고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아파트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층간소음은 남의 일이 아니다. 아파트 주민이라면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다. 그 가해와 피해의 충돌이 사건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한동안 잊고 있었지만, 전에 살던 아파트의 층간소음도 괴이했다. 무당도 아니건만 어떤 날은 쿵쿵 날뛰는 소리로 염장을 지르더니, 어떤 날은 세상 떠나갈 것 같이 웩웩거리면서 과도한 음주가 자신의 간(肝)과 아랫집의 정신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곤 했다. 그때마다 거칠게 항의를 했지만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악순환이었다.
층간소음은 원인도 문제이지만 그 소음에 대한 항의도 세련돼야 한다는 지혜를 최근에야 깨달았다. 진심 어린 엽서나 편지가 이웃 간의 갈등을 치유했다는 인터넷 미담을 수차례 접하고서다. 저 새벽의 편지도 그런 깨달음의 실천이었으니, 다행히 지금까지는 효과만점. 그런데 소음이 다시 발생하면? 참아야 하나, 항의해야 하나, 새벽 편지를 또 써야 하나. 걱정도 팔자다.
이정일 금융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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