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나도 지난 몇 년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회의비를 본래 취지와 다르게 사용하는 데 둔감해졌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직장 문화에서 회의비의 부정 또는 부적절한 집행이라는 것은 한 개인의 모럴 해저드만으로 돌릴 수 없는 구조적인 현상이라는 확신이 굳어져갔다. 그럼에도 찜찜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어 언제부터인가 내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애매한 경우에는 그냥 내 개인 카드로 처리하기로 했다.
작년에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서 연구 회의비 집행 규정 개선에 관해 약 1000명의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가 있다. 국내 연구 문화상 국가연구과제의 연구 회의비 항목이 필요하다는 데에 84%라는 절대 다수가 동의했다. 또 연구 회의비 항목을 없앨 경우 연구자들이 회의비를 개인 경비로 처리해야 함에 따라 연구참여자의 경제적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응답자가 47%였다. 예전 회의비로 집행했던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또 다른 연구비 부정행위가 발생할 것이라는 의견에도 33%가 동의했다.
재미있는 것은 연구 회의비 항목이 왜 필요 또는 불필요한지 연구자들이 주관식으로 답한 내용이다. 약 100쪽의 보고서에 무려 80쪽이 주관식 의견으로 채워져 있는데 그만큼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필요한 이유로는 위계적인 한국 문화에서 그나마 식사를 통해 수평적 관계로 연구를 논할 수 있다는 점, 연구가 점점 거대ㆍ융합화되면서 공동연구자 사이의 회의 필요성이 늘고 있다는 점, 밤낮 없는 장시간 연구 체제에서 근무시간 외 식대 지출의 불가피성, 연구실ㆍ실험실 외 비공식적인 대화에서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아이디어 교류가 활발해진다는 점 등이다.
이처럼 회의비의 필요성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한 것은 회의비 오남용이 전적으로 연구자 개인의 윤리 문제도 아니고, 연구 환경 탓만도 아님을 반증한다. 최근 다르파 로봇챌린지에서 우승한 휴보 연구팀의 리더 오준호 카이스트 교수는 연구소 회식을 일 년에 딱 한 번 한다는데 연구환경의 문제라면 왜 같은 한국적 연구문화에서 누구는 회의비를 규정에 맞게 쓰고 누구는 남용하는가? 반대로 개인의 윤리 문제라면 대부분 미국에서 공부한 교수들이 미국에서는 안 그런데 한국에 자리를 잡으면 회의비를 애매하게 쓰게 되는가? 회의비에 대한 나의 회의(懷疑)는 계속되지만 규정을 더 깐깐하게 만든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거라는 데는 확신이 선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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