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편집 강의를 가는 길, 그리고 오는 길. 영화 '잠수종과 나비'를 보았다. 1995년 '엘르'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에게 일어났던 일. 그는 아이와 새로 산 차를 타고 달리다가 발작을 일으키며 정신을 잃는다. 20일 간의 혼수상태 뒤에 이 남자는 이승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왼쪽 눈을 깜박거리는 일 밖에 할 수 없는 전신불수의 몸이 된다. 그는 1997년까지 15개월의 삶을 산다. 보비는 20만번 눈을 깜박여 150페이지의 자서전을 쓴다. 그 책이 '잠수복과 나비'이다. 영화는 이 자서전을 토대로, 영화 언어의 어휘를 기적적으로 넓혀놓았다.
영화는 주인공 '장 도'의 그 하나 남은 눈 안으로 카메라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세상은 흐리고 중첩되며 또 벽처럼 갇혀있으며 단절되어 있다. 그의 오른쪽 눈을 꿰매는 장면은 내가 한 영화 체험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게 아닐까 한다. 바늘을 들고 눈의 위아래 꺼풀을 봉합할 때 세상이 바늘땀 만큼 사라지기 시작한다. 속눈썹이 껌벅거리며 남은 풍경을 붙잡으려 애쓴다. 그러나 장 도의 영혼은 이런 절망 속에서도 오히려 담담하다. 유머와 낙천주의가 영화의 빛깔까지 담백하게 한다.
많은 글을 쓰면서, 즐거운 일과 괴로운 일을 각각 많이 만났다. 세상에 대해 알게 되기도 하고 더욱 모르게 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다가왔다가 사라졌다. 사건들도 그랬다. 밤낮으로 쏟아낸 언어들이 나를 불편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기도 했지만, 또 나를 승천하게 하고 내 정신을 고양시키기도 한 듯 하다. 인간이란 그 조건이 다르긴 하지만 잠수종과 함께 가라앉으며 나비를 꿈꾸는 양상은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20만번의 윙크 만큼 절절하고 강력하게, 목숨을 다해 글을 쓸 수 있는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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