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고 러시아가 아시아로 남진하는 것도 막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서구 열강의 후발주자였던 미국만의 힘으론 역부족이었다. 마침 러일전쟁에서 승기를 잡아가던 일본을 든든한 아시아 맹주이자 동맹국으로 만들어서 태평양 너머 미국의 국익을 보호한다는 것이 당시 태프트의 구상이었다.
약 110년을 사이에 둔 가쓰라-태프트 조약과 새 미ㆍ일 방위협력지침은 묘한 기시감(데자뷔)을 일으킨다. 미국은 중국의 군사력 확대를 홀로 막아내는 데 힘이 부쳤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태평양전쟁 전범국 일본에 채워진 봉인을 해제해 중국 견제의 선봉에 세우는 카드를 선택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취임 초부터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정상국가 일본'을 갈망해 왔다.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또 한 번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셈이다.
하지만 미ㆍ일 양국은 물론 주변국들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역설'을 망각해선 안 된다. 이 밀약이 맺어진 지 불과 몇 달 뒤 을사늑약이 체결됐고 이는 1910년 한일병탄으로 이어졌다. 자신감을 얻은 일본 우익과 군부는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은 데 이어 미국의 진주만도 공습했다.
아베 총리의 지휘 아래 급속히 우경화하고 있는 일본에 미국이 재무장의 날개를 달아주는 모습이 불안하다. 불길한 기시감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따져보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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