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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북아일랜드의 갈등과 치유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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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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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아일랜드섬 북동부에 위치한 북아일랜드. 1969년부터 30년 동안 민족주의자(가톨릭교도)와 연합주의자(신교도) 간 분쟁으로 3600여명이 죽고 3만명 넘게 부상을 입었다. 3만3600여명에 이르는 사상자의 가족까지 감안하면 이는 북아일랜드 전체 인구의 절반에 해당한다.

북아일랜드 분쟁의 역사는 1170년 영국군이 아일랜드 북부 얼스터 지방을 침략하면서 시작된다. 아일랜드를 손아귀에 넣은 영국은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신교도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그곳의 원주민인 가톨릭교도들과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졌다.
텃새가 철새의 공격을 이겨내기는 어려운 법이다. 일방적으로 당하던 민족주의자들이 급기야 총을 들었고, 이에 맞서 영국군이 북아일랜드에 주둔하면서 피해가 급속도로 커졌다. 결국 폭력으로는 상대방을 제압하기 어렵다는 점을 깨닫고 나서야 양측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긴 끝에 마침내 1998년 4월 '성(聖)금요일의 합의'를 이뤄냈다. 어느 한쪽이 이기거나 지는 게임이 아닌 서로 상생하는 길을 선택했다. 서로 조금씩 이득을 얻음과 동시에 양보함으로써 가능했다.

보다 중요한 점은 단순한 정치적 합의에 머물지 않고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 그간의 갈등의 뿌리를 교육을 통해 찾고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북아일랜드가 30년 동안 피를 부르는 갈등에 휩싸였는지를 어제의 아군과 적군이 함께 역사를 산책하며 탐구한다.

그들은 먼저 시민교육과 화해교육을 통해서 민초들의 상처를 치유(healing)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 아일랜드 사회 전체가 참여했다. 유럽연합(EU)은 그에 필요한 재정을 부담했다. 치유의 방법도 독특했다. 우리네 같으면 그냥 '잊어버리자(forgetting)'고 했을지 모른다. 신앙심이 강한 사람은 '용서(forgiving)하자'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아일랜드는 '기억하기(remembering)'라는 시민교육을 통해 갈등을 치유하고 있다.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기억은 카메라 사진의 저장 기능과 달라서 사건 당시의 당사자 마음 상태와 주위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들은 각기 다른 기억을 가지며,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의 내용도 변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가해자의 기억과 피해자의 기억이 함께 제대로 정리되어야 한다. 이른바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진실 파악은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회피하지 않아야 과거로부터의 질곡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점에서 취약하기 짝이 없다.

잊는 것은 쉽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치유 방법이 아니다. 돼지우리의 오래 된 구정물은 겉으로 보기에는 맑지만, 막대기로 휘저으면 밑에 가라앉은 부유물이 죄다 떠오르고 만다. 북아일랜드의 화해교육은 희생자와 가해자 모두 인간성을 회복하고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권한을 공정하게 재분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예를 들어 내각의 장관들은 총선거에서 이긴 여당이 독식하지 않고 정당별 득표수에 비례하여 임명되며, 주요 안건은 만장일치제로 결정한다.

우리나라도 '갈등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갈등 요인이 널려 있다. 남북 간 갈등부터 지역 갈등, 노사 갈등, 갑과 을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정치ㆍ경제ㆍ사회적 갈등이 겹치고 포개져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우리나라 사회갈등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고,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연간 246조원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연간 조세 수입과 맞먹는다. 우리도 늦기 전에 사회적 갈등에 대한 치유를 시도해야 한다. 북아일랜드가 하는 일을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암은 예방이 수술보다 쉽고 돈도 덜 들어간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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