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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 선불교의 히트송 메들리(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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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스승은, 돌아갈 무렵에 꽃과 잎에 관한 게송(깨달음의 노래)을 메들리로 부른다. 내가 시에 관심이 많은지라 이게 참 흥미롭다.


내가 처음 이 땅에 온 것은
부처말씀을 전하여 어지러운 마음을 구함이다
꽃 한 송이에 잎은 다섯 개
열매가 맺히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吾本來玆土 傳法救迷情 一花開五葉 結果自然成

- 달마의 게송

* 참 쉽게도 말씀하셨다. 그런데 꽃 하나와 다섯개 잎이 눈에 띈다. 매화 꽃잎을 말함인가. 꽃 하나가 피어도 다섯 개 잎이 저토록 잘 받춰주니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기대한 것일까.

본래의 연(緣)은 땅이 있어
그 땅에 인(因)하여 꽃씨를 뿌려 피우지만
본래는 씨가 없으니
꽃 역시 피어나지 않는다

本來緣有地 因地種花生 本來無有種 花亦不會生

- 혜가의 게송

* 혜가는 스승 달마의 게송을 늘 떠올리며 수행을 해나갔을 것이다. 의문을 가져보기도 하고 뒤집어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스승과 마음 속의 대화를 해나갔을 것이다. 이 시는 스승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스승님 열매가 맺히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라고요? 땅과 꽃은 서로 인연이 있어 생명을 피우는 것이지만, 부처 마음은 본래 씨가 있는 것이 아니며 본래 존재하는 본성이니 꽃이 피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본래'를 두번이나 쓰면서 강조한 것은, 땅과 꽃의 인연이 법과 대중화와는 딱이 같다고 말할 수 없다는, 스승에 대한 이견이나 첨언이 아닐까. 진리는 피어나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 그 자체이며 따라서 시드는 법도 없는 것이다. ㅎㅎㅎ 혜가의 안짱다리 걸기가 무섭지 않은가.


꽃씨는 땅에 얽혀있으므로
땅에 따라 꽃씨는 피어난다
만약 씨를 뿌리는 사람이 없다면
꽃밭엔 결국 아무런 꽃도 피어나지 않으리

- 승찬의 게송

華種雖因地 從地種華生 若無人下種 華地盡無生

* 마치 이분들이 한 자리에 앉아 갑론을박하는듯 불꽃이 튄다. 오랜 시차를 두고 평생을 고뇌하며 한 수 씩 적어내는 것이라 대꾸가 만만찮게 치열하고 격렬하다. 혜가선생님. 씨가 없으니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고요? 일견 선불교의 본질적 정신으로는 맞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이 선풍을 진작해야 하는 미션을 맡고 있는 사람들 아닙니까? 꽃 피우는 노력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스승님이 그렇게 초를 쳐 놓으시니 우린 뭐 손가락만 빨라는 얘깁니까? 이런 기분이다. 꽃과 땅이 인연에 얽힌 것처럼, 사람과 부처말씀의 진리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말씀의 진리가 사람이라는 밭에 뿌려지면 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걸 아무도 안 뿌린다면, 중국이 원래 그대로 있지 부처 말씀을 따르는 나라가 되겠는가, 이 말씀이다.


꽃씨는 피어나는 성질이 있으니
땅 인연만 있으면 꽃의 삶은 피어나는 것이다
큰 인연과 믿음이 합쳐지면
이 중생들은 살기도 하고 못 살기도 하느니

- 도신의 게송

華種有生性 因地華生生 大緣與信合 當生生不生

* 도신은 절충을 했다. 날카로운 격론이 오가던 게송 메들리는 조금 누그러지는 기분이다. 아따, 행님들, 왜 그렇게 날카롭게 주장들을 해쌓는 겁니까? 꽃은 아시다시피 땅만 있고 어디든 피어나는 것 아닙니까? 부처의 말씀이 짓는 인연이 믿음과 합쳐질 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보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다만, 땅이 있다고 꽃이 모두 생존률 100%가 아닌 것처럼, 우리 선불교가 제대로 살 가능성도 반반이라고 봐야죠. 열심히 포교하면 좀 퍼센트가 올라갈 것이고...그렇게 생각합시다잉. 내가 극락가면 또 더 논의하고...이런 유머가 느껴지는 건 나의 과민한 귀일까.


본성이 있어 씨를 뿌리면
땅으로 인하여 과연 다시 생겨나지만
뜻이 없고 씨도 없으면
본성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다

- 홍인의 게송

有性來下種 因地果還生 無情亦無種 無性也無生

* 내가 보기엔 게송의 급으로 보자면 홍인이 캡인 거 같다. 스승들, 너무 도식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십니까? 땅만 있다고 피어나는 건 아니죠. 그것을 뿌리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씨와 씨 뿌리는 마음을 혼동해선 안됩니다. 씨도 중요하고 그것을 뿌리는 것도 중요하단 얘깁니다. 뿌리는 마음이 없어도 안되고 뿌릴 씨가 없어도 안되죠. 그렇게 되면 피어나려는 성질도 없을 것이고 생겨나는 꽃도 없을 것입니다. 홍인은 성정(性情)이라는 개념을 가져와, 씨와 밭의 논란에서 콘텐츠나 기획의 중요함을 살짝 불어넣었다. 논의에선 나중에 말하는 사람이 유리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앞사람이 반박할 수는 없으므로, 홍인은 총정리를 하면서 모두에게 어퍼커트 한 방씩을 날렸다.


마음밭에 나쁜 꽃이 핀다
다섯 꽃잎은 뿌리를 따라 온 것이다
함께 어둠 속의 업을 지었기에
보아라 업이 내는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다

- 혜능의 게송

心地邪花放 五葉遂根隨 共造無明業 見被業風吹

정말 혜능은 최고이다. 달마가 읊은 게송을 바로 가져와 그것에 답하고 있다. 꽃 하나에 다섯 꽃잎이 서로 도와 열매가 맺히는 것은 자연의 일이라고 달마는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실제로 혜능이 중국에서 포교를 해본 결과, 옛 스승이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습디다. 이걸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꽃이 핀다고 다 좋은 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잘못 풀어내고 더욱 엇나가서 자연스럽지 않은 밭을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꽃잎이 좋고 나쁜 것은, 그 뿌리에 이미 그 까닭이 숨어 있는 것이더군요. 그러나 우리가 주창하는 것이, 오랜 업장을 소멸하는 수행이니, 이것 또한 인정하고 품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겠지요. 우리의 미션 작업이 가끔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그런 뜻에서 이해가 됩니다. 아프지 않은 꽃이 어찌 아름다울 수 있겠습니까. 그 아픔마저 품어가는 넓은 믿음으로 거듭나야 하겠지요. 이렇게 답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혜능의 게송을 들은 달마가 그 부리부리한 눈을 꿈벅이며 흐뭇해 했을지 모르겠다. 그 꽃과 씨와 땅과 바람의 노래 속에, 선(禪)의 큰 화두가 피어나 있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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