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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 칼럼] 중국몽과 한국몽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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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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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난주 방한은 우리로 하여금 'G2(주요 2개국)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연내 타결을 비롯해 양국 정상 간 여러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현안 몇 가지는 공동성명에서 회피되거나 얼버무려졌다. 이렇게 된 것들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과 관련이 있다.

공동성명에서 회피된 현안 중 대표적인 것은 일본의 우경화 및 왜곡된 역사인식에 대한 공동대응이다. 이는 이튿날 시 주석의 서울대 강연과 양국 간 특별오찬에서 거론됐을 뿐이다.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내년이 중국 항일전쟁 승리와 한반도 광복 70주년임을 상기시키고 양국이 공동으로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갖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공동성명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대신 정부는 국민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동연구와 사료교환에 합의한 사실을 부각시켰다. 대중국 한ㆍ미ㆍ일 공조라는 미국의 전략적 입장에 신경 쓴 결과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 문제도 그렇다. 시 주석은 박 대통령에게 이 두 기구 창설에 대한 한국의 동참을 요청했으나 박 대통령은 즉답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AIIB는 중국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설립을 추진 중인 국제개발금융기구로,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세계은행(WB)ㆍ아시아개발은행(ADB)과 경합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은 기참여국 간 협상 결과를 보고 나서 참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FTAAP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밀어붙이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항하는 의미가 있다. TPP 참여도 미정으로 놔둔 상태에서 FTAAP 참여 제안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북한 핵문제는 중국 쪽에서 얼버무렸다. 이번에도 시 주석은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의 실현을 이야기했고, 공동성명도 그렇게 작성됐다. 이를 두고 우리 정부는 실질적으로 같은 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남한과 미국까지 염두에 두고 중국 측에서 사용해온 표현이다. 중국은 전통적 우방인 북한을 자극하기를 피하는 동시에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까지 견제하려는 것이다. 북한 핵 포기 유도에 대한 시 주석의 의지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다.

정부는 시 주석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고, 다수 언론도 그렇게 보도했다. 그렇다면 그러한 시 주석의 방한에서 우리 정부가 충분한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는가. 그렇다고 평가하기가 망설여진다. 시 주석은 다분히 패권주의적인 '중국몽(중국의 꿈)' 실현 노력의 일환으로 방한했다. 국제사회는 그가 한국을 끌어안고 일본을 견제한다는 중간목적지에 좀 더 다가선 것으로 본다. 시 주석이 방한한 기간에 일본 정부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일부 해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시 주석의 견제에 대한 맞춤형 대응이다.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시 주석의 구호로 대변되는 중국몽에 상응하는 '한국몽'은 무엇인가. 우리는 중국이나 미국ㆍ일본과 달리 애초부터 패권주의적 꿈은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오직 거주공간인 한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공존을 바랄 뿐이고, 그 연장선에서 남북한의 통일이 이뤄지기를 원한다. 이것을 한국몽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과연 이번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에 이런 한국몽의 실현을 앞당겨줄 요소가 얼마나 포함됐을까.

한중 FTA 협상 촉진과 원화ㆍ위안화 직거래시장 개설 등 경제분야의 여러 합의는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G2 대결구도의 틈바구니에 갇혀 옹색한 한국몽의 처지를 확인하니 안타까운 느낌마저 든다. 주체적인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한국몽 운신 폭 확대의 관건이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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