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측면도 있겠으나 승리하지 못한 전쟁에 좌절감이 더해져 미국은 북한 지역에 무차별적 폭격을 가했다. 7월 중순 1주일간 양쪽에서 10만명이 죽었다.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빼앗으려는 양쪽의 치열한 군사작전도 수많은 피를 흘린 끝에 '백마고지'라는 단어로 한국인의 머릿속에 새겨졌다.
하지만 6ㆍ25 전쟁 발발 전 한국 정부는 "명령만 내리면 평양을 접수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 했고, 이 전 대통령도 북진통일 의지를 노골적으로 표시해 주변국을 자극했다. 이것은 6ㆍ25 전쟁의 간접적 원인을 제공했다. 미국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승만정부에 무기 공급을 꺼렸고, 북한은 '북진'에 대비하기 위해 오히려 군사력을 증강함으로서 양쪽의 전력 차이를 심화시켰다.
1940년대 후반 북진통일론과 1953년의 그것은 구분돼야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모한'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건, 결과적으로 심각한 민간인 희생과 정신적ㆍ경제적 피해를 유발한 '철저한 파괴'로 종결됐기 때문일 것이다. 부패한 지도층은 전쟁의 피해를 잘도 피해다녔고, 총알받이로 죽어간 건 힘없는 집안의 소년들이었다는 사실 역시 6ㆍ25 전쟁에 대한 애통하고도 깊은 흉터를 남겼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설득력 있는 기조에서 움직이고 있다. '변화에는 지원을, 도발에는 단호한 대처를'로 요약되는 이 정책이 성공하길 바라지만, 만에 하나라도 역효과를 낸다면 '상대를 무모하게 몰아세웠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박근혜정부 대북정책의 첫 시험대인 개성공단 문제가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다. 군사 배치, 중대 결심 등 호전적 용어가 난무하는 이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풀어갈 것인가는 정전 60주년을 맞는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고민해야 할 과제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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