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채제민의 별명은 '또자'. 틈만 나면 쪽잠을 잔다. 잠꾸러기는 아니다. 불규칙한 생활 탓에 생긴 습관이다. 저녁부터 시작하는 일의 마침표는 대개 새벽. 아침 8시가 돼야 겨우 잠에 들 수 있다. 간혹 낮일정이 생기면 뜬눈으로 이틀째를 맞는다. 공연 전 대기실은 수면실과 다름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채제민은 건강을 우려한다. 더 큰 걱정은 가족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를 자주 보지 못한다. 불규칙한 생활로 인천의 집이 아닌 서울의 작업실에서 독거하기 때문이다.
잦은 교통사고도 이유 중 하나다. 원인은 모두 졸음운전. 이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아도 자주 대리운전을 애용한다.
“운전면허 취득 해가 1990년인데, 올해 보험료를 200만 원 이상 지불했다. 내가 사고 낸 아내 차까지 더 하면 400만 원 가까이 된다.”
“빵점짜리 남편이다. 결혼하면서 이런 모습을 기대하진 않았을 텐데.”
그녀는 그의 첫사랑이다. 고등학교 시절, 학생들의 돈을 뺏으러 간 도서관에서 보고 첫눈에 반했다.
“미스 인천 출신인데, 어렸을 때는 더 예뻤다. 얼굴에서 늘 빛이 났다.”
채제민은 매일같이 도서관을 들러 그녀를 훔쳐봤다. 친구들은 이런 그를 숙맥 취급했다. 고백할 것을 연거푸 부추겼다. 며칠 뒤 그는 용기를 냈다. 어렵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결과는 참혹했다. 눈앞의 그녀가 반대편으로 전력질주하며 모습을 감췄다.
“까까머리의 삭막한 인상 탓인지 서둘러 도망가더라. 그 뒤로 도서관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녀를 다시 본 건 수년이 흐른 뒤였다. 재회는 운명 같았다. 나이트클럽 연주 뒤 탄 지하철 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긴 정적 속의 서먹함. 채제민은 하늘이 준 기회라고 여겼다. 이후 끊임없이 그녀를 쫓아다니며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됐다.
호전된 관계에는 가수 이승환의 노력도 숨어있었다. 밴드 드러머의 짝사랑이 자신의 팬임을 알고 공연 중 따로 이벤트를 마련했다. 사비로 여행을 준비해주기도 했다. 특히 채제민은 안성으로 떠난 여행을 소중하게 간직한다. 텐트를 치고 낚시를 하던 중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차에 올랐지만 악재는 계속됐다.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에서 차까지 고장 난 것. 둘은 처음으로 함께 밤을 지새웠다. 분위기는 야릇하지 않았다. 믿음을 주기 위해 손만 잡은 채 조용히 눈을 감은 까닭이다.
“그 때 점수를 많이 딴 것 같다. 다른 생각을 품었다면 아마 결혼에 골인하지 못했을 거다(웃음).”
어느덧 결혼 16년차. 둘 사이에는 생긴 아들과 딸은 각각 16살과 8살이다. 늘어난 식구는 채제민에게 삶의 이유이자 활력소다. 그는 언제나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밖에 보지 못하는 현실에 늘 안타까워한다.
“돈을 많이 벌면 다 해결되지 않겠나. 빵점짜리 가장이지만 백점을 향한 과정이라 가족들이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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