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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 2배 뛰었지만 분양 안해요"…'대기만 1년'인 노인주택의 철학[인생3막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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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훈 LTS그룹 회장
자회사 설립해 프리미엄 실버타운 '더시그넘하우스' 운영

"더시그넘하우스는 분양형 실버타운 제도가 금지되기 전에 사업 인가를 받았어요. 지금 강남 자곡동 땅 시세를 생각했을 때 분양을 한다면 수익이 어마어마하겠죠. 그러나 저는 분양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지난 28일 아시아경제와 만난 박세훈 LTS그룹 회장은 현재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서 운영 중인 실버타운 '더시그넘하우스 강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17년 준공된 더시그넘하우스 강남은 '프리미엄 실버주택'으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공실은커녕 입주 대기 기간만 1년이 넘는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나 장관, 은행장 같은 굵직한 자리를 거쳤던 인물들이 살고 있다.

같은 기간 맞은편에 있는 아파트가 가격이 2배가 뛰었지만, 박 회장은 더시그넘하우스를 분양할 생각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분양이 이뤄지면 실버타운이 시니어 주거시설의 역할을 오롯이 하기 어려워진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박세훈 LTS그룹 회장이 더시그넘하우스 로비 소파에 걸터앉아있다. 사진=LTS그룹

박세훈 LTS그룹 회장이 더시그넘하우스 로비 소파에 걸터앉아있다. 사진=LTS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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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시그넘하우스는 제조업 그룹 LTS그룹의 자회사인 '도타이'가 만드는 실버주택 브랜드다. 원불교 신자인 박 회장이 원불교 재단에 노유자시설(노인과 유아를 위한 시설) 부지 계약금 18억원을 꾸어줬다가 부지를 떠안았는데, 그 길로 직접 실버주택을 만들게 됐다. 정말 우연한 계기였다. 박 회장은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해보고 싶어 준비를 2년 동안 했다"며 "삼성노블카운티와 보바스병원 등 기존에 내로라하는 시니어 시설에서 관계자들을 스카우트하고, 건물 설계자들과 일본까지 가서 노인주택을 보고 오는 등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건물 설계는 공모를 통해 가장 어르신들에게 편한 동선으로 짠 설계도를 뽑았다고 한다.


프리미엄 실버주택으로 명성이 자자한 더시그넘하우스는 최근 인천광역시에 2호점인 청라점을 냈다. 이날 기자가 방문한 청라점 앞에는 심곡천이 흐르고, 뒤에는 어린이집이 있어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차로 10분 거리에는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이 있어 아프면 언제든 갈 수 있다. 대부분의 공간이 문턱이 없는 '배리어프리(무장애)'로 지어져 있었고, 움직임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엘리베이터는 한 층에 세 대씩 마련돼 있었다.


입주가 시작된 건 지난 2월. 총 139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이 시설에는 현재 열여덟 가구가 들어와 살고 있다. 박 회장도 일주일에 두 번은 이곳 청라점에 와서 지낸다. 직접 살아보면서 어떤 게 더 필요한지 몸으로 체험해보려는 취지다. 지하 2층에서 옥상까지 함께 돌며 공간 곳곳을 소개하는 그에게서 실버타운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이날 오후 3시, 로비 층에 마련된 아틀리에에는 입주민 4명이 모여 미술 수업을 받고 있었다. 이 외에도 스트레칭, 보드게임, 영화 상영 시간이 마련돼 있어 원한다면 언제든 다른 입주자들과 어울려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박 회장은 "실버타운에서 제공할 수 있는 질 좋은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제공되는 프로그램이 더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크린 골프장부터 노래방까지 공용시설이 여러 가지다. 더시그넘하우스의 자부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을 하나 꼽자면.

▲입주민들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다양해질 수 있도록 공용공간에 공을 많이 들였다. 집 면적보다 공용공간 면적이 더 넓을 정도다. 주변에서도 커뮤니티 시설에 관심이 많더라. 그러나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 직원들이다. 직고용한 직원이 아니라도, 더시그넘하우스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우리 회사에서 교육받아야 한다. 우리가 왜 이 서비스를 하고 있는지,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교육이다. 그렇게 사명감을 심어준다. 동시에 입주민들에게도 꼭 당부하는 게 있는데,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 달라는 거다. 돈을 낸다고 하대할 수 있는 권리까지 생긴 게 아니다. 직원 서비스의 퀄리티는 입주민이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당부만으로 그게 가능할까.

▲한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다. 어떤 입주민이 청소담당자가 집 청소를 하고 나올 때마다 도둑질한다고 민원을 넣더라. 그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CCTV까지 보여드렸는데도 거듭해서 민원을 넣었다. 그래서 회사 차원에서 그분의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직원 개인이 대응하기는 어렵지 않나. 엘리베이터에서 할머니에게 계속 짓궂게 농담을 하는 할아버지도 상담한 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커뮤니티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더 이상 모실 수 없다고 말이다. 사실상 경고를 한 거다. 그만큼 우리는 직원들이 '월급 받고 일하는 직장인'을 넘어 '어른을 모시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려고 노력한다.


-하드웨어 측면에서 강남점과 청라점의 차이가 있다면.

▲규모는 강남점이 훨씬 크다. 다만 거기에는 약국이나 병원 같은 시설이 들어올 수 없게 규제돼 있다. 그런데 인천시는 근린생활시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줬다. 그래서 청라점에는 곧 한의원이 1층에 입주하기로 돼 있고, 원불교 교당도 들어와 있다.


-더시그넘하우스 3호점 계획도 있나.

▲물론이다. 2가지로 검토하고 있다. 하나는 80~90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실버타운이다. 지금 대부분의 실버타운이 입주민을 받을 때 80세 이하라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그런데 건강수명이 점점 늘어나면서 80세 이상인데도 혼자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틈새 수요를 수용할 수 있는 주택을 도심에 만들고 싶다. 지금 더시그넘하우스 청라점에서는 1~2층에 있는 집들을 그 콘셉트로 운영하고 있다. 혼자서 살 수 있는 사람인지는 우리가 직접 인지검사를 실시해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실버타운 컴플렉스'다. 강을 낀 10만평 이상의 부지에 실버타운을 세우고 싶다. 대단지를 세우고 싶다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집라인, 캠핑존, 풀장 등을 마련해 시니어들의 손주들이 놀러 오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만들려는 계획이다. 다양한 세대가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실버타운 사업을 직접 해보면서 느낀 제도상의 문제점이 있다면.

▲우리나라 노인주택 제도를 다루는 사람들이 "몇 세대를 만드느냐"에 집중하는 게 문제라고 본다. 절대적인 물량이 늘어나야 하는 건 맞는데, 정책의 포커스가 거기 맞춰져 있으면 안 된다는 거다. 인간은 나이가 들고 노쇠해질수록 외롭다. 원래 사후에 대한 생각을 안 하던 사람들도 하게 되고, 이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내가 청라점에 교당을 만든 것도 이러한 점을 고려해서다. 커뮤니티 공간을 집이 차지하는 공간보다 넓게 만든 이유도 여기 있다. 크고 세대 수만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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