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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의대와 수련병원이 함께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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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의대와 수련병원이 함께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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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내년도 대학입학전형 변경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의대 정원이 지난해보다 1509명이 늘어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고 한다. 이제 31일까지 내년도 대학별 입시요강을 최종 공고하면 지난 100일 가까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의대 증원이 사실상 마무리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현장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지난 2월에 시작된 의료 파행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악마’로 내몰려서 병원과 강의실을 떠나버린 전공의와 의대생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10년 후에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어설픈 의료 개혁을 핑계로 당장 오늘의 의대와 의료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것은 명백한 정책 실패다. 의대 증원의 거센 후폭풍은 이미 시작되었다. 물론 그 피해는 온전하게 국민의 몫이다.

당장 필수·지역 의료를 담당해야 할 전문의 양성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이미 올해 새로 시작하는 인턴이 3000명에서 130명으로 줄었다. 수련을 끝내고 전문의 자격시험을 치러야 하는 레지던트의 수도 크게 줄어든다. 군의관·보건의 확보도 어려워진다. 멀쩡했던 전문의 양성 시스템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수련병원의 경영과 응급실 뺑뺑이로 알려진 필수 의료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가 입만 열면 강조하던 ‘기계적 법 집행’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계약 만료 시점에 사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전공의를 ‘악마적 범죄자’로 내몰 수는 없다. 면허를 박탈하고, 사표 수리를 금지하고, 국내외 취업을 막으려면 법에 따른 절차가 필요하다. 헌법에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마저 무시해 버린 행정부의 일방적인 행정조치를 사법부가 인정해 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학생들이 강의실을 떠나버린 의과대학의 상황도 절망적이다. 내년 의대 1학년 강의실은 늘어나는 신입생과 유급·재수강을 위해 남아있는 재학생이 마구 뒤섞인 북새통으로 변하게 된다. 의대 강의실·실습실의 혼란이 내년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내년에 의대 강의실에서 시작된 황당한 경쟁은 앞으로 모든 의대생이 평생 짊어지게 될 숙명이 돼버릴 것이다.

대부분 의과대학의 부속으로 운영되고 있는 100개 수련병원도 무너진다. 수련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보건복지부의 계획도 의대 증원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련병원의 전환은 의대 증원만큼이나 어려운 개혁 과제다.


수련병원에서 전공의의 비중을 낮추는 일은 의대 증원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자격을 갖춘 전문의를 더 많이 채용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매년 의대를 졸업하는 젊은 의사들에게 엄격한 도제식 수련을 담당하는 수련병원의 수도 함께 늘려야 한다. 그런데 수련병원에는 수련을 담당할 전문의도 필요하고, 수련 기회를 제공할 환자도 필요하다. 물론 엄청난 규모의 재정 지원도 필요하다.


절차상의 문제도 심각하다. 아직도 의대 증원을 반영하는 학칙 개정을 완료하지 못한 대학이 있다. 교수·학생들의 거센 반발이 계속되는 대학도 있다. 대학 규제 제로화를 핵심으로 하는 교육개혁도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의사 양성과 의료 서비스 체계를 무너뜨린 책임은 온전히 보건복지부에 있다.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진정한 의료 개혁은 무능한 보건복지부를 바로 세우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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