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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스토리]‘의대증원’ 국민투표라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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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기각’ 결정 사실상 본안 판단
의협, 판사 인신공격 선 넘은 행동
환자 위해 하루빨리 복귀해야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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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 상황이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내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확정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초유의 ‘의대생 집단유급’·‘전문의 미배출’ 사태에 대한 우려가 점점 현실이 돼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이 순간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제때 수술이나 치료를 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다.


물리적인 실력 행사가 금지된 법치국가에서 이해관계가 다른 두 주체의 갈등은 종국적으로 사법부를 통해 해결된다. 국민투표를 거쳐 개정된 헌법과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률에 그렇게 정해져 있다. 아무리 첨예하게 대립하며 싸웠더라도 법원의 확정판결이 나면, 그 결과를 수용하고 따라야 한다. 국가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합의한 최소한의 룰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의료계가 보여준 모습, 특히 의사들을 대표하는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이나 소송대리를 맡고 있는 이병철 변호사가 판결 불복을 넘어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한 판사들을 인신공격하며 음모론까지 제기하는 행태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정부의 의대증원 추진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법원의 ‘각하’ 결정들이 신청인의 자격을 부인한 형식재판이었다면, 최근 서울고등법원의 ‘기각’ 결정은 사실상 본안 판단에 가깝다.


먼저 법원은 의대 입학정원을 정하기 위한 교육부 장관의 처분은 각 대학 총장을 상대방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의대 교수나 전공의는 아예 처분을 다툴 자격조차 없는 ‘제3자’라고 판단했다. 또 학습권을 침해받을 수 있는 의대생들은 집행정지를 신청할 자격은 인정되지만, ‘의대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이라는 공공복리를 위해 그들의 권리를 일부 희생해서라도 공공의 이익을 옹호할 필요가 있다는 게 사법부의 결론이다.

재판부는 "현재 우리나라는 필요한 곳에 의사의 적절한 수급이 이뤄지지 않아 필수의료·지역의료가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라며 "이러한 상황을 단지 현재의 의사인력을 재배치하는 것만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이고, 적어도 필수의료·지역의료의 회복·개선을 위한 기초 내지 전제로서 의대정원을 증원할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번 고등법원의 결정은 대법원에서 결론이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고, 쟁점과 판단기준에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본안소송도 결과가 다르지 않을 것이란 게 법조계의 지배적인 전망이다.


무엇보다 국민 대다수가 의대증원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무조건 안 된다’는 식의 의료계 태도에 70%대 초반이었던 ‘의대 증원 2000명’ 찬성 여론은 최근 조사에서 80% 가까이까지 늘어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증원 백지화’,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며 정부와의 대화에 나서지 않는 건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의대 증원으로 건강보험료나 본인부담금이 인상돼 국민 부담이 늘 수 있고, 갑자기 정원이 늘어난 대학들은 교육을 감당하기 어려워 전반적인 의사들의 수준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의사가 부족한 상태를 정부가 계속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변호사시험을 도입하기 위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처음 만들 때 전국의 변호사들과 법대 교수, 법과대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집단투쟁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도 로스쿨, 특히 규모가 작은 대학의 교육상 한계, 변호사의 질적 수준 저하 등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실제 일부 부작용이 있었지만 변호사 수가 늘어난 지금 국민들이 입은 피해보다는 법률서비스 접근성이 높아지는 등 긍정적 측면이 훨씬 더 많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대통령의 국민투표 부의권을 규정하고 있다. 1980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에서 지금처럼 내용이 바뀌었는데, 당장은 의대증원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지금의 상황이 계속 이어져 국민의 생명권이 심각하게 침해받는 지경에 이른다면 국민투표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인류에 봉사하는 데 내 일생을 바칠 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하여 고려할 것이다.’ 1948년 세계의사협회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현대화한 제네바 선언의 일부다. 무엇보다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 하루빨리 병원으로, 대학으로 돌아와 주길 바란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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