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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산책] 여자의 권력과 남자의 자부심…욕망을 그린 '설정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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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말기부터 현재까지
76명 초상화·자화상 선보여

셀카에 '보정' 설정' 있듯이
의도적 손짓·사물 탐구 묘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전시에 영국 팝가수 에드 시런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전시에 영국 팝가수 에드 시런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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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미국 사진작가 로버트 코넬리우스는 1839년 10월 필라델피아에 있는 자신의 가게 뒷마당에서 15분 가까이 부동자세로 ‘얼짱각도’를 유지했다. 마침내 ‘찰칵’ 찍힌 사진 한 장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셀카’다. 포즈나 각도 면에서 오늘날의 셀카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세기 초반까지는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약 30분간 피사체 노출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그가 ‘인생샷’을 얻기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였을지 짐작이 간다.


성능 좋은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된 오늘날엔 셀카를 찍는 데 단 1초도 걸리지 않는다. 화질은 말할 것도 없고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신이 감추거나 드러내고 싶은 외모를 쉽게 수정할 수도 있다.

셀카는 사진 기술의 발달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사진기가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에도 ‘셀카 욕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엔 주로 자화상을 통해 이를 해소했다. 부와 계급이 있는 자는 화가를 고용해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시대의 얼굴, 셰익스피어에서 에드 시런까지’ 전시에서는 중세 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 했던 인물 76명의 초상화와 자화상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작품은 모두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 출품됐다.


니콜라스 힐리어드(1547~1619)가 1575년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를 그린 초상화.(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니콜라스 힐리어드(1547~1619)가 1575년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를 그린 초상화.(사진제공=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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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옥 피부에 수백개의 진주가 박힌 화려한 옷을 입은 한 여성이 서 있다. 오똑한 콧날에 굳게 다문 입술, 떡 벌어진 어깨에서는 강인한 남성성도 느껴진다. 한눈에 봐도 신분이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영국 초상화가 니콜라스 힐리어드(1547~1619)가 1575년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를 그린 초상화의 모습이다. 튜더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엘리자베스 1세는 잉글랜드를 45년간 통치하며 대영제국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초상화를 통해 권력과 권위, 부(富)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오른손에 쥔 붉은 장미는 그의 가문인 튜더 왕조의 상징이다. 그가 앞으로도 굳건히 가문을 지켜갈 것이라는 확신이 전해진다.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는 명언을 남긴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처녀성을 강조하는 암시도 곳곳에 배치했다. 진주는 순수함, 불사조 장식은 처녀성과 재생을 상징한다. 국왕으로서의 권위와 순수한 여성의 이미지를 모두 표현하고자 했던 엘리자베스 1세의 의지가 엿보인다.

영국 화가 월터 시커트(1860~1942)가 1927년 당시 영국 재무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1874~1965)을 그린 초상화.

영국 화가 월터 시커트(1860~1942)가 1927년 당시 영국 재무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1874~1965)을 그린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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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셀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찍으면 그만이지만 과거엔 어땠을까. 화가 못지않게 모델도 많은 시간을 작품에 할애해야 했기에 바라던 그림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 실망감은 더 컸을 것이다. "너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다"며 건넨 초상화가 자신의 외모와는 전혀 다른 괴팍한 모습일 때 ‘나를 이 정도밖에 생각하지 않는구나’라며 실망도 했을 것이다.


영국 화가 월터 시커트(1860~1942)는 1927년 당시 영국 재무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1874~1965)의 집에서 그림 과외를 했다. 그는 어느날 처칠에게 초상화를 그려 선물로 건넸다. 그림 속 처칠은 위협적인 정치인이 아닌 적극적인 학생의 모습으로 묘사됐다. 얼굴은 그림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유독 크게 그려졌다. 처칠은 이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선물로 받자마자 다른 이에게 줘버렸다고 한다.


조슈아 레이놀즈(1723~1792)가 1747~1749년 완성한 자화상.

조슈아 레이놀즈(1723~1792)가 1747~1749년 완성한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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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자화상은 10여점이 걸려 있다. 자화상은 예술가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춰지길 원하는지 등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셀카에 ‘보정’과 ‘설정샷’이 있듯 자화상에도 작가가 의도적으로 꾸민 제스처나 주변 사물들이 있어 보는 맛을 더한다.


18세기 영국 초상화계 대표 화가였던 조슈아 레이놀즈(1723~1792)가 1747~1749년 완성한 자화상은 그의 초기작으로 화가로서 자신의 당당함을 표현하고 있다. 화판 앞에 선 작가가 팔레트와 붓 등을 한 손으로 쥐고 있다. 또 다른 손으로는 빛을 가린 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표정에서 자신의 재능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묻어난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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