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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잔인한 해고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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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 이슈&트렌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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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기차기업 테슬라에 다니던 조르다나 에르난데스는 월요일 출근대란 경험자다. 일요일에 발송된 해고 이메일을 확인하지 못한 직원들이 월요일에 출근했다가 사원증이 먹통돼 대거 출근이 늦어진 사건이다. 에르난데스는 링크드인(비즈니스 중심 소셜커뮤니티)에 "피와 땀, 눈물을 바쳤는데 회사는 인간성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아직 남아 있는 모든 리더 여러분, 계속해서 팀에 필요한 자비로운 리더가 돼 달라"면서 "사람들에게 테슬라가 후진적인 정책과 지표 그 이상임을 계속해서 보여 달라"고 말했다. 일론 머스크가 인수한 이후 트위터(현 X) 직원들은 슬랙(협업도구) 접속이 차단되고 ‘트위터에서 귀하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이메일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기업 해고 추적 사이트(Layoffs.fyi)의 집계를 보면 올 들어 20일까지 259개 테크기업에서 7만4672명이 해고됐다. 2022년(1064개 기업·16만5269명), 2023년(1192개 기업·26만3180명) 등 3년 반 새 50만명이 직장을 잃었다. 한마디로 ‘뽑을 땐 까다롭게, 다닐 땐 극진하게, 내칠 땐 잔인하게’다. 미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해고가 쉽고 재고용 기회, 경력직 채용이 활성화했다. 해고에 대한 인식도 다르다 보니 자신이 해고당하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위로받는다. "어차피 잘리니 최소한의 일만 하자"는 ‘조용한 퇴사’에서 사직 의사를 밝히고 할 말은 다 하고 나가는 ‘시끄러운 퇴사'까지 해고에 대응한다.

우리나라는 경영상의 긴박한 사유 등을 제외하면 해고가 쉽지 않다. 명예퇴직, 희망퇴직제도 등을 통해 사람을 내보낸다. 퇴직금에 위로금까지 수억 원을 챙겨서 나가는 이들은 극소수다. 한국 직장인에게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바깥은 지옥이다"는 말은 금과옥조다. 버틴다고 놔두는 회사도 없다. 교묘한 방법으로 제 발로 걸어나가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제안을 받고 퇴직하지 않으면 모든 허점을 악용해 자르는 방법을 찾는다. 비참하게 회사를 다니게 만드는 것이다. 장기 재직자의 경우는 위로금 등을 더해 내보내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더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자발적 퇴사’를 하게 만들기도 한다.


포스트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인공지능(AI)시대, 전기차와 같은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해 잔인한 해고는 계속될 것이다. AI시대에는 AI가 일자리를 만들거나 없애고 채용부터 성과 평가, 해고 통보까지 하게 된다. 극단적인 찬성론자들은 말한다. 정리해고는 회사가 침몰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회사가 번성하고 있다는 신호다. 주주는 왕이고, 노동자는 필요한 짐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덜 필요해진다고.

2009년 영화 ‘인 디 에어’는 미국 전역을 돌며 해고를 통보하는 해고 전문가가 주인공이다. 시대가 바뀌고 회사는 해고 통보를 화상 인터뷰로 대체한다. 이렇게 잘린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의 여성 직원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회사는 결국 "지금은 아니다"며 화상해고를 중단하고 해고 전문가를 다시 기용한다.


사람을 자르는 일은 그 자체로 잔인하다. 특히 회사를 떠나 미래와 생계가 불투명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남은 자들도, 떠난 자들도 한동한 트라우마를 겪을 수밖에 없다. 사람을 자르거나 내보내는 게 아니라 '떠나보내는' 인도적인 방법, 인간다움을 기대하는 것이 순진한 생각일까.





이경호 이슈&트렌드팀장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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